삼성 계열사들이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매각 등 그룹 지배구조 개편안을 현 상황에서 추진하기 어렵다는 의사를 정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시장 일각에서 나오는 삼성물산의 삼성전자 지분 매입 가능성에 대해 “검토하지 않고 있으며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삼성물산, 電子 지분 인수 어렵다"
24일 정부에 따르면 삼성은 최근 금융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계열사들의 순환출자는 해소하겠다”면서도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간 지배구조 문제는 당분간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정부가 삼성을 포함한 국내 대기업 그룹을 대상으로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개편하라고 요청한 데 대한 답변이다.

삼성은 공정거래법과 보험업법, 금융그룹 통합감독 등에 따른 복합적인 규제 탓에 삼성전자 지분 매각을 통해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게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 규제로 삼성전자 지분을 다른 계열사에 파는 게 쉽지 않으며 외부에 팔면 경영권이 흔들릴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 같은 삼성 측 의견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방침을 세워 삼성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고객들이 낸 돈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대주주 일가의 지배력을 강화한다는 이유에서다. 정부는 삼성생명(8.23%)과 삼성화재(1.44%) 등 삼성 금융계열사들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율(9.67%)을 낮춰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삼성이 내놓을 후속 대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삼성물산, 電子 지분 인수 어렵다"
삼성은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의 지배구조 개편방안 대신 삼성전기(2.61%), 삼성SDI(2.11%), 삼성화재(1.37%) 등 계열사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 총 6.1%를 순차적으로 매각하겠다는 의사를 정부에 전달했다. 삼성그룹의 7개 순환출자 고리를 모두 끊어내기 위한 조치다. 지난 10일 그 첫 단계로 삼성SDI가 삼성물산 지분을 시장에 블록딜로 내다 팔았다.

◆정부 “순환출자 해소로는 불충분”

순환출자는 계열사 주식 소유 관계가 A→B→C→A 등으로 순환되는 구조다. 정부는 총수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다수의 계열사를 지배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이유 등으로 ‘순환출자 고리 해소’를 재벌 개혁을 위한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순환출자 문제는 정부 방침을 따르고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의 지배구조 문제는 시간을 두고 ‘큰 그림’을 그린 뒤 해결하겠다는 게 삼성 측 구상이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지난 20일 간부회의에서 “법 개정 이전에 단계적 자발적 개선 조치를 실행하라”고 경고한 것은 “삼성 측 방침을 수용할 수 없다”는 메시지라는 게 경제계 안팎의 해석이다. 최 위원장은 공정거래위원회, 청와대 등과도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지배구조 개편이 어려운 이유에 대해 정부에 자세한 설명을 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제계에선 공정거래법과 보험업법 등 그물망처럼 얽혀 있는 지배구조 관련 규제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삼성은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 경영권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대주주 일가 5.35% △삼성생명(8.23%)과 삼성화재(1.44%) 등 금융 계열사 9.67% △삼성물산 4.63% 등 총 20% 안팎의 지분으로 확보하고 있다. 외국인 지분율은 50%가 넘는다. 정부 방침에 따라 금융 계열사들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외부에 매각하면 경영권이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는 게 삼성 측 우려다.

다른 계열사에 매각하는 일도 쉽지 않다. 최근 시장에서는 사실상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삼성물산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매입할 것으로 예상해왔다. 삼성물산이 지난해부터 서울 서초사옥과 한화종합화학 지분(20.05%) 등 비핵심 자산 매각을 추진하고 있는 게 삼성전자 지분 매입을 위한 포석이라는 관측이다. 증권가를 중심으로 삼성물산이 삼성바이오로직스(43.44%) 지분을 삼성전자에 매각하고 그 돈으로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을 매입하는 사업 재편이 추진될 것이라는 얘기도 퍼지고 있다. 이 지분 가치는 24일 종가 기준 13조6000억원. 삼성전자 지분 7%가량을 매입할 수 있는 돈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2대 주주인 삼성전자(31.49%)가 이 지분을 넘겨받으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최대 주주(74.93%)로 올라설 수 있다.

◆전자 지분 매입 어려운 이유는

이에 대해 삼성 측 관계자는 “공정거래법 등 규제로 인해 실현하기 어려운 방안”이라며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지분을 인수하는 방안은 검토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추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지분을 사들이는 방안은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공정거래법을 위반하는 사항이다. 다만 삼성전기(2.61%)와 삼성화재(1.37%)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을 매각해 기존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면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지분을 매입할 길이 열린다. 삼성도 이들 지분은 매각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지분을 추가로 매입하면 일반 지주회사로 강제 지정될 수 있다는 점은 더 큰 문제다. 현행법상 삼성물산이 보유한 자회사 지분 가치가 전체 자산의 50%를 넘게 되면 지주회사로 전환된다. 삼성물산이 지주회사로 전환되면 자회사 지분을 20% 이상 보유해야 한다는 지주사 규제에 따라 삼성전자 지분을 추가로 사야 한다. 삼성전자 지분 1%를 추가로 사들이는 것만 해도 3조원이 필요하다. 지주사로 전환되면 삼성생명 등 금융회사 주식을 2년 이내(한 차례 연장 시 총 4년)에 팔아야 하는 규제도 있다.

삼성전자 지분을 팔 때 발생한 차익을 유배당보험 계약자에게 배분하는 문제도 골칫거리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매입한 자금엔 유배당보험 계약자의 돈이 들어가 있어서다. 유배당보험 계약자들에게 배당으로 나눠줘야 할 몫을 두고 삼성 측과 시민단체 간 의견차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좌동욱/임도원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