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일감몰아주기 과세’ 강화의 첫 밑그림을 담은 연구용역 보고서가 나왔다.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특례를 폐지 또는 대폭 축소하고 과세 대상도 그간 예외로 뒀던 지주회사와 프로스포츠구단으로 점차 늘려나가는 등의 방안을 담고 있다. 하지만 그간 정부가 표방한 ‘중소·중견기업 육성’과 상충되는 데다 기업의 일자리 창출 등 투자 의욕을 꺾을지 모른다는 지적도 있어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지주사-자회사간 거래도 '일감몰아주기' 과세
◆“중소·중견기업 특례 손본다”

27일 한국경제신문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정병국 바른미래당 의원에게서 입수한 기획재정부의 ‘일감몰아주기 과세의 실효성 제고 등 개선 방안’ 용역보고서를 보면 정부는 일감몰아주기 과세 강화를 위한 첫 타깃으로 중소·중견기업을 지목했다. 기재부는 일감몰아주기 과세 강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한국재정법학회에 연구용역을 줬다.

보고서는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차등 규정은 폐지하거나 대폭 축소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지난해 12월 개정된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증세법)에 따르면 대기업은 특수관계법인과의 거래비율(내부거래비율)이 전체 거래액의 5%만 초과해도 증여세를 내야 한다. 이에 비해 중견기업은 내부거래비율이 정상거래비율(40%)의 절반인 20%를 넘지만 않으면 된다. 중소기업은 정상거래비율(50%)을 넘는 내부거래에 대해서만 증여세를 부담한다. 과세 부담이 기업 규모별로 차등화된 것이다.

보고서는 “중소·중견기업은 과세가 면제되는 최소 정상거래비율이 너무 높아 편법적인 부의 증여에 과세한다는 취지가 무색해졌다”며 폐지 또는 축소를 권고했다. 이는 “중소기업이라도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사적 대물림을 한다면 규제해야 마땅하다”는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등 현 정부 경제팀의 기조를 반영한 것이다. 중견기업 일감몰아주기의 대표적 사례로는 경영권 편법 승계를 위해 총수 장남에게 일감을 몰아준 하림그룹(지난해 대기업으로 지정)을 꼽았다.

대기업 지주회사도 일감몰아주기 과세를 회피하는 대표적인 유형 중 하나로 거론됐다. 보고서는 “기업 소유지배구조 형태에 따라 과세를 달리 적용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과세 필요성을 강조했다. 현행 상증세법은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가 자회사 및 손자회사와 거래한 매출은 과세 대상에서 제외한다. 일각에선 대기업 집단의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장려해온 정부 정책 방향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프랜차이즈 통행세도 과세

프랜차이즈 기업이 가맹점과 거래하는 과정에서 거래단계를 추가하는 ‘통행세’ 관행에 증여세를 물려야 한다는 방안도 제시됐다. 미스터피자, BBQ, 현대글로비스 등 사례가 거론됐다. 보고서는 “거래상 뚜렷한 역할이 없거나 전후방 사업자와 역할이 중첩되면 일감몰아주기 과세를 할 수 있다”고 봤다.

이 밖에 과세 대상 수혜법인을 외국 법인으로 확대하고, 특수관계에 있는 개인사업자로부터의 매출을 과세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 등도 검토할 과제로 제시됐다.

경제계에서는 정부의 일감몰아주기 과세 강화에 대해 “징벌적 과세로 기업 활동을 과도하게 제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일감몰아주기 제재는 공정거래법상 규제로 대부분 가능하다”며 “추가적 규제를 신설하면 오히려 법적 안정성을 해칠 것”이라고 말했다. 정병국 의원은 “당초 입법 취지를 살려 가뜩이나 어려운 중소기업이 주저앉지 않도록 세심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기재부는 이번 용역 결과를 토대로 곧 출범할 재정개혁특별위원회 논의를 거쳐 올해 세법개정안에 일감몰아주기 과세 강화 방안을 포함시킬 계획이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