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 동물병원 수의사들이 병원을 찾은 반려견을 진료하고 있다. 반려동물의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당뇨, 암, 디스크 등 중증 질환을 앓는 동물도 늘어나고 있다.  /건국대 제공
건국대 동물병원 수의사들이 병원을 찾은 반려견을 진료하고 있다. 반려동물의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당뇨, 암, 디스크 등 중증 질환을 앓는 동물도 늘어나고 있다. /건국대 제공
10년 정도 반려견과 함께 산 사람들은 비슷한 고민을 한다. 우리집 강아지가 아픈 데는 없을까, 남은 시간은 얼마일까, 어떻게 이별을 해야 하나 등. 반려견의 평균 수명은 1980년대까지 3.7세였다. 요즘 평균 수명은 약 14.2세. 위생 상태와 생활 환경이 좋아져 오래 살 수 있게 됐다. 고령화 문제는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당뇨, 암, 디스크, 심혈관계 질환 등 사람이 걸리는 병 대부분을 개와 고양이가 똑같이 앓는다. 반려동물 입양과 교육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가족이었던 반려동물 고령화와 장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반려동물 보험제도 등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암 걸린 개, MRI·항암치료에 수천만원… 보험 가입률은 0.1% 불과
◆의료비, 병원마다 천차만별…최대 8배

반려동물 고령화로 인한 가장 큰 부담은 의료비다. 병원 갈 일은 나날이 늘지만 진료항목과 수가 등이 표준화돼 있지 않아 적정 치료비조차 알 길이 없다. 한 소비자단체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동물병원의 초진비와 검사비, 예방접종비 등은 병원별로 최대 4~8배 차이가 났다. 9년생 몰티즈를 키우고 있는 한모씨(42)는 “슬개골 탈구가 심해 병원에 갔는데 한 동네에서 어떤 병원은 1000만원을, 어떤 병원에서는 150만원을 이야기하더라”며 “가격 차이가 너무 나 어떤 병원을 선택해야 할지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돈을 버는 수의사들도 곤란하기는 마찬가지다. 서울 중랑구에서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정모 원장은 “병원을 찾는 보호자는 5~10년 정도 꾸준히 다닌 사람들인데 의학적 판단으로 강아지나 고양이의 수술을 권하고 비용을 이야기하면 마치 사기꾼을 만난 것처럼 발길을 끊는 경우도 있다”며 “아주 심각한 상해가 아니면 수술 권유는 거의 안 한다”고 말했다.

동물병원이 전국 4426개에 달하지만 아직 진료항목은 표준화돼 있지 않다. 진료비 기준 산정을 위한 데이터도 없다. 일부 지역 수의사는 진료비 가이드라인을 내부적으로 마련해 이를 어기고 싸게 받는 병원을 음해하는 일도 있었다. 병원마다 ‘부르는 게 값’이라는 인식을 소비자들이 갖게 된 이유다.

반려동물보험이 있긴 하다. 하지만 가입률이 0.1% 수준이다. 영국(20%) 독일(15%) 미국(10%)에 비해 턱없이 낮다. 보험회사들은 2008년부터 반려동물 전용 보험을 출시했지만, 이익이 나지 않자 상품을 없애거나 적금으로 바꿔버렸다. 반려동물 의료비를 감당하지 못한 보호자들이 치료를 중단하고, 내다 버리는 등 악순환이 이어지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반려동물 등록제를 재점검해 실효성을 확보하고 이를 기반으로 보험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2015년 반려동물 등록제가 시행되고, 이를 위반하면 40만원의 과태료를 내게 했지만 단속 건수가 지금까지 1건에 불과하다. 등록률도 33%대에 그치고 있다.

표준수가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소비자를 과잉진료나 바가지요금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다. 동물병원 간 경쟁이 치열해지자 과시성 투자가 이뤄지고 이것이 과잉진료로 이어지는 것을 차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항암치료·요양원…반려동물도 실버산업

반려동물 보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병원 수 증가와 고령화에 따른 의료서비스 다양화에 따라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동물병원은 2014년부터 2017년까지 4년간 모든 병·의원 가운데 신경정신과 다음으로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지난해 대한수의사협회가 집계한 동물병원은 전국 4426개. 피부과(3639개) 이비인후과(2461개)보다 많다. 수의사 수도 7000명에 육박한다.

24시간 진료하는 응급 동물병원도 크게 늘었다. 건국대 동물병원은 동물응급의료센터에서 동물 환자를 받고 있다. 단순 상해뿐 아니라 심혈관계 질환 등 고령화 질환에 대한 의료 수요가 늘었다. 건국대 동물병원 관계자는 “하루 평균 20~30마리의 반려동물이 당뇨, 비만, 디스크, 암 등 중증 질환으로 병원을 찾는다”며 “사람에게 쓰는 의료기기와 치료제 등이 동일하게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반려견이 잘 걸리는 3대 암은 유방암, 임파선암, 피부암 등이다. 유방암에 걸린 8년생 암컷 반려견을 키우는 박모씨(38)는 “1년 전 루나의 암을 발견하고 혈액검사, 항암치료 등에 쓴 비용만 3000만원 정도”라며 “하루라도 더 함께 있고 싶은 생각에 치료에 전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반려동물 실버타운도 인기다. 일본 이바라키현의 ‘해바라기’는 노묘와 노견의 집으로 불린다. 동물 간호사들이 노령견이나 장애가 있는 반려동물을 돌본다. 이런 시설이 일본에 64곳이 있다. 반려동물과 함께 입주가 가능한 실버타운도 있다. 장례시장도 커지고 있다. 리무진 운구부터 염습, 실크 수의, 보석 납골함 등 최고급으로 하면 100만원을 훌쩍 넘기는 사례도 있다. 납골당엔 일반실보다 2~3배 비싼 특실이 존재한다. 유골을 고온 처리해 ‘메모리얼 스톤’으로 만들어 간직하는 사람도 늘었다.

김보라/구은서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