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 비웃는 가상화폐… '고강도 계좌 검사' 칼 빼든 정부
가상화폐 투기 열풍 차단을 위해 정부가 고강도 규제를 가하고 있지만 별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투자자 유입을 막기 위해 가상화폐거래소에 대한 은행의 가상계좌 제공을 중단시켰지만, 신규 업체들은 가상계좌 없이 자사 법인 계좌로 투자금을 받으며 회원 유치에 나섰다. 기존 거래자들의 추가 자금 유입도 활발해 가상화폐 리플 가격이 한 달 새 15배 이상 뛰는 등 열풍은 지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농협은행과 기업은행 등 6개 은행의 가상화폐 관련 계좌에 대해 고강도 검사를 하는 등 추가 조치에 나섰다.

◆가상계좌 없이도 매매 중개

지난해 12월까지만 하더라도 국내 가상화폐 거래시장은 빗썸 코빗 코인원 업비트 등 소수 업체가 주도했다. 하지만 최근엔 30개 가까운 업체가 매매를 중개하고 있다. 빗썸 업비트 등 기존 주요 업체들이 오는 20일까지 신규 회원가입을 중단했지만 가상화폐 시장에 자금이 지속적으로 밀려드는 배경이다.

지난 5일엔 코미드라는 업체가 영업을 시작하자 가입자들이 몰려 한때 웹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다. 이 업체는 기존 가상계좌 방식이 아니라 법인계좌를 이용해 매매를 중개한다. 법인계좌로 가입자들의 돈을 받아 ‘충전금’으로 바꿔주고 비트코인 등의 거래를 하는 방식이다. 이외 코인레일, 비트포인트, 코인네스트 등 다른 업체도 가상계좌 없이 법인계좌로 회원들의 투자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당국은 은행과 주요 거래소 업체를 압박해 신규 자금 유입을 막는 효과를 노렸지만 신생 업체들은 이를 피해나가고 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거래소 업체가 회원들로부터 법인계좌에 입금을 받아도 (실명이 확인되는 동일 은행 간 이체를 통한다면) 가이드라인과 법령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검증되지 않은 업체에 자금이 몰리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달 19일 소형 거래소 업체 유빗이 가상화폐 출금지갑에서 전체 자산의 17%를 해킹당해 파산하면서, 이용자들은 돈을 떼이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신생 업체는 거래 시스템이 검증되지 않았고 해킹이나 횡령 등의 사고 위험도 높다”고 지적했다.

◆정부, 불법자금 추적 본격화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과 금융감독원은 8일부터 11일까지 국민 신한 우리 농협 기업 산업은행 등 6개 은행에 개설된 총 2조원 규모(지난달 기준)의 가상화폐거래소 관련 계좌를 검사한다. 개인이나 거래소 업체의 불법행위가 드러나면 검찰·세무당국에 넘길 계획이다. 은행도 규정을 어겼을 경우 징계한다.

탈세 목적 자금세탁과 외국환 관리법 위반 등이 주요 점검 대상이다. 예컨대 거래소 계좌로 거액을 입금한 기록만 있고 출금한 일이 없는 경우 자금을 비트코인 등으로 바꿔 해외로 빼돌렸을 확률이 높다고 금융당국은 보고 있다. 반대로 입금한 흔적은 없는데 거액의 출금 기록만 있다면 중국인 등의 환치기 거래일 가능성이 있다는 게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중국과 거래해온 한 무역회사의 법인계좌에 최근 무역대금으로 볼 수 없는 소액이 자주 입출금됐는데, 양국을 오간 가상화폐 거래로 드러나기도 했다”고 전했다.

거래소 업체에 대해선 시스템이 허술한지 여부와 일반 법인을 가장한 계좌 등을 이용해 뒷거래한 사실이 있는지를 점검한다. 은행도 점검 대상이다. FIU는 가상화폐 관련 거래를 ‘고위험 거래’로 규정하고 의심거래 등에 40개 이상의 체크리스트를 통해 자금세탁 방지 의무 등을 부과했다. FIU 관계자는 “불법이나 의무 위반이 적발되면 법령에 따라 과태료 등 금전 제재와 임직원 해임 등 신분 제재를 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이현일/박신영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