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정책국장(맨 오른쪽)과 마이클 비먼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보(맨 왼쪽) 등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 수석대표단이 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USTR 사무실에서 1차 협상을 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정책국장(맨 오른쪽)과 마이클 비먼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보(맨 왼쪽) 등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 수석대표단이 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USTR 사무실에서 1차 협상을 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1차 협상에서 미국은 한국의 자동차 시장 추가 개방을 요구했다. 한국은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개선을 요구하는 한편 농축산물 시장 개방은 어렵다는 점을 미국 측에 설명했다. 하지만 농축산물 시장 개방을 ‘레드 라인(넘지 말아야 할 선)’으로 설정한 통상당국의 전략이 오히려 운신의 폭을 좁힐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측 1순위는 자동차

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1차 협상에 한국 측은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정책국장이, 미국 측은 마이클 비먼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보가 수석대표로 참석했다. 유 국장은 협상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미국 측은 자동차 분야 이슈를 집중 제기했다”고 말했다.

2012년 3월 발효된 한·미 FTA는 한국의 안전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자동차라도 미국의 안전기준을 충족하면 업체당 2만5000대까지 수입할 수 있도록 쿼터(할당)가 설정됐다. 미국 자동차업계는 이 쿼터를 없애거나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한국의 무역장벽 때문에 미국 차가 안 팔린다”는 미국 측 주장은 국내 자동차업계의 인식과는 차이가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차가 안 팔리는 것은 독일산이나 일본산에 비해 경쟁력이 없어서지 규제 때문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러스트벨트(쇠락한 미국 공업지대) 노동자들의 지지를 업고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지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동차 시장 개방에 집착하는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산업부는 작년 말 국회에 한·미 FTA 개정 협상 추진계획을 보고하며 “(자동차 분야) 비관세 장벽 해소 등 개선 방안을 협의하겠다”고 밝혀 사실상 시장 개방을 협의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농산물 레드라인 설정, 한국에 자충수될 수도"
◆농축산물 개방 요구 가능성

미국이 농축산물 시장 개방도 요구했느냐는 질문에 유 국장은 “구체적으로 개별사항을 말씀드리기 어렵다”며 “다만 우리가 농업시장 개방은 논의하기 어렵다는 것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답했다. 김현종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농축산물 분야 개정은 우리가 수용할 수 없다고 미국 측에 확실히 전달했다. 농업은 레드 라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에 수출을 늘리고 싶어 하는 미국이 농축산물 분야 추가 개방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이 많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국이 쉽게 수출을 늘리기 좋은 게 농축산물”이라며 “협상은 주고받기인데 농축산물은 무조건 안 된다고 선을 그으면 다른 부분에서 그만큼 희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농림축산식품부 주도로 어떤 농축산물이 경쟁력 있는지 검토해 개방할 수 있는 건 개방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ISD 개정 필요성 제기

한국은 이날 미국 측에 ISD 개정 필요성을 제기했다. ISD는 외국에 투자한 기업이나 개인이 상대방 국가의 정책 등으로 이익을 침해당했을 때 해당 국가를 상대로 직접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제도다. 외국인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지만 거액 배상을 노리는 소송이 급증할 것이란 지적이 한·미 FTA 체결 때부터 있었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이 조항을 근거로 첫 소송이 제기됐다. 미국 시민권자인 서모씨는 자신이 소유한 부동산이 재개발 과정에서 위법하게 수용됐다며 법무부에 ISD 중재의향서를 제출했다. 서씨는 서울 마포구의 주택 및 토지 188㎡를 2001년 3억3000만원에 샀다. 이후 마포구가 재개발을 위해 이 땅을 수용하며 8억5000만원을 책정했는데, 서씨는 액수가 시장가치에 미치지 못한다며 소송에 나섰다. 정부는 ISD가 개정되지 않으면 앞으로 이 같은 사례가 속출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태훈 기자/워싱턴=박수진 특파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