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에서 ‘금고(金庫)’ 쟁탈전이 뜨겁다. ‘금고’는 대형 공공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의 기금 및 예산을 관리하는 주거래은행을 뜻한다. 수십, 수백조원에 달하는 금고 관리권을 따내기 위해 은행들은 막대한 출연금을 약속하거나 파격적인 금리우대 조건을 내걸고 있다. 올 하반기엔 600조원의 기금을 관리하는 국민연금공단이 주거래은행을 새로 정한다. 7개 지자체도 주거래은행을 재선정할 예정이다.
600조 국민연금 주거래은행 '쟁탈전'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이날 주거래은행 재선정을 위한 입찰을 마감했다. 국민연금 주거래은행이 되면 내년 3월부터 2021년 3월까지 598조원 규모(6월 말 기준)의 국민연금 기금을 관리하게 된다. 국민연금 자금 결제와 2183만 명의 연금 가입자를 대상으로 수납, 지급 업무를 맡는다. 이 때문에 이번 입찰에는 신한, KEB하나, 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이 총출동했다.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는 곳은 2007년부터 11년째 국민연금 주거래은행을 맡고 있는 신한은행이다. 신한은행은 지난 7월 경찰공무원 대출 사업자 경쟁에서 국민은행에 밀린 터라 국민연금 주거래은행 자리를 지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국민은행은 국민연금 주거래은행을 따내면 ‘1등 은행’으로 올라설 수 있다고 판단해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수개월 전에 시스템 솔루션업체인 LG CNS와 컨소시엄을 꾸려 입찰 준비에 나섰다.

국민연금뿐만이 아니다. 올 하반기에는 전라남도 등 7개 지자체가 주거래은행을 재선정할 계획이다. 각각 4조~6조원대 예산을 보유한 곳들이어서 은행 간 신경전이 치열할 전망이다.

은행들이 금고 쟁탈전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막대한 기금·예산 관리권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주거래은행이 되면 해당 기관 및 지자체의 세입·세출 업무와 직원 월급통장 관리까지 담당할 수 있다. 수백, 수천 명의 신규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셈이다. 일각에선 주거래은행 선정을 둘러싼 과열 조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은행업계 관계자는 “주거래은행이 되면 은행으로 유입할 수 있는 자금 규모가 막대하다 보니 신규 입찰을 따내기 위해 수천억원의 출연금을 약속하기도 한다”며 “기존 계약을 지켜내지 못하면 담당임원이 문책을 당할 정도”라고 귀띔했다.

안상미/이현일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