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5월 대선…'예산편성 대란' 온다
초유의 5월 대선…'예산편성 대란' 온다
대통령 탄핵으로 ‘5월 조기 대선’이 현실화되면서 예산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 예산편성 일정과 정치 일정에 ‘미스매치’가 발생해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차기 정권이 막대한 예산이 드는 대선 공약을 밀어붙이면 사상 초유의 ‘예산편성 대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4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조기 대선으로 차기 정부가 5월 초 출범하면 각 부처가 새 정부의 공약과 정책을 담아 ‘예산요구서’를 작성할 기간이 20일 안팎에 불과하다. 각 부처는 기재부의 예산편성지침에 따라 매년 5월 말까지 내년에 필요한 예산을 요청해야 하기 때문이다.

새 정부 초대 국무위원의 국회 인사청문회 기간(평균 한 달)을 고려하면 차기 정부는 일러야 5월 말이 돼야 구성된다. 사실상 각 부처 예산요구서에 새 정부의 국정철학을 담을 시간이 없는 셈이다. 새 정부가 조직 개편에 나서면 혼란은 더 커진다. 바뀐 정부 직제에 따라 예산요구서를 새로 짜야 해서다.

더 큰 문제는 정권인수위원회 과정이 생략돼 대규모 예산이 드는 공약을 곧바로 정책으로 밀어붙일 때 생긴다. 정부 관계자는 “이 경우 공약의 재원 추계부터 따져 예산안을 완전히 다시 짜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졸속과 파행이 속출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예산당국 출신 한 전직 경제부처 장관은 “대선주자들이 대선 과정에서 무차별적인 공약을 최소화하고 핵심 국정과제를 미리 내놓아 검증받는 절차를 거쳐야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과거 정권은 12월 대선을 마치고 두 달간 인수위를 꾸려 실현 불가능한 공약은 빼고 집권 기간 중 중점 추진할 국정과제를 설정했다. 기획재정부 예산실 한 관계자는 “과거 정권교체기엔 새 정부 국정과제에 맞춰 부처들이 예산요구서를 만들면 됐지만 차기 정부에선 이게 불가능할 것”이라며 “부처들은 대통령 당선인이 선거기간 중 내놓은 수백, 수천개 공약 중 어떤 공약을 넣어 예산요구서를 짜야 할지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때문에 부처들은 올해 5월 말 예산요구서를 ‘대충’ 작성해 제출하고 6~8월 예산실 심의 과정에서 대대적인 예산안 수정 작업에 나서는 게 불가피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정권 출범 후 한두 달 지나 청와대 비서실 및 내각 구성을 완료하고 주요 국정 아젠다와 그 추진 일정을 구체화한 다음에야 새 정부의 ‘색깔’을 입힌 예산 사업들이 본격적으로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기존 예산요구서에 반영한 사업 중 상당수는 축소·삭제·변형돼 ‘누더기’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예산요구서를 대대적으로 뜯어고치는 과정에서 기존 및 신규 예산사업의 사업성 검토가 제대로 이뤄질지 걱정”이라고 했다.

예산실 고위 관계자는 “차기 정부가 집권 초기 정부조직 개편을 밀어붙일 경우 수백, 수천개 정부 사업을 개편되는 조직에 맞춰 재분류하는 작업까지 해야 한다”며 “그야말로 대란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예산당국 출신인 한 전직 정부부처 장관은 “차기 정권이 정책 목표를 충분히 담은 내년 예산안을 수립하기 위해선 출범 직후 핵심 국정 아젠다를 조속히 발표해 각 부처의 예산편성 작업을 지원해야 한다”며 “그러러면 실현 불가능하고 허황된 포퓰리즘 공약을 내놓아 부처들에 혼란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조직 개편을 임기 중반으로 넘기는 것도 올해 예산편성 대란을 막는 방안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상열/황정수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