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법제화 등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이 속속 국회 문턱을 넘으면서 재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상법 개정안도 야당 주도로 논의에 속도를 붙이고 있어 탄핵 정국을 이용한 기업 옥죄기가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민주화법 속속 국회 통과] "징벌적 손해배상 줄소송 부를텐데"…국정공백 틈탄 국회 '일사천리'
◆이중 처벌 논란

여야가 24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기업이 악의적인 불법행위를 저질러 심각한 손해를 일으킨 경우 발생한 피해보다 더 많은 금액을 배상하도록 하는 제도다. 관련 법안은 ‘제조물책임법 개정안’과 ‘가맹사업거래공정화법 개정안’ 두 개다.

제조물책임법상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제품 생산자의 고의 또는 과실로 소비자의 생명과 신체에 중대한 손해를 입혔을 때 제조사에 최대 세 배까지 손해배상 책임을 부과하는 내용이다. 제조물책임법에는 제품의 원료 공급업자가 피해자에게 제조업자를 알리지 않으면 공급업자도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가맹사업거래공정화법 개정안은 프랜차이즈 가맹 본부에서 가맹 사업자에게 보복 조치를 하거나 허위 정보를 제공한 경우에도 최대 세 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재계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취지는 공감하지만 손해배상 범위와 수준이 과도해 부작용을 낳을 소지가 있다고 우려한다. 한 대기업 임원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쳤다면 손해만큼만 배상해 주는 것이 원칙인데, 징벌 개념을 적용해 몇 배 이상을 배상하도록 하는 것은 사실상 이중 처벌”이라고 강조했다. 법조계에서도 인과관계가 있는 손해만 규정하는 민법상 ‘실손해배상’ 원칙에 배치되고, 헌법상 과잉금지 및 이중처벌 금지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는 의견이 다수다.

◆기업 대상 줄소송 가능성

기업들은 과도한 배상을 요구하는 줄소송이 잇따를 수 있다는 점도 걱정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에 큰 부담을 주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보다는 기업의 피해 보상 규모를 현실적으로 높이는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미국에서도 부작용을 염려해 5개 주에서 인정하지 않고, 인정하는 주들도 인정요건, 배상액수 상한제한, 배상액의 국고귀속 등 다양한 형식으로 제한하고 있는 추세”라며 “전 세계적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소극적 입장이 확산되고 있는데 우리만 거꾸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중기 적합업종 지정 법제화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서 22일 통과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법 개정안’은 정부가 3년마다 수립하는 상생협력 추진 기본계획에 ‘적합업종 지원 및 육성’을 포함하도록 명문화했다. 민간 자율협력기구인 동반성장위원회 차원에서 이뤄지던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을 법제화한 것이다.

당초 정부기관인 중소기업청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권고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개정안에 포함돼 있었으나 법안심사소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막판에 삭제됐다. 그럼에도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대한 법률적 근거를 만들어 통상마찰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 최장 6년인 대기업 참여 제한 기간을 8년으로 늘리는 내용도 개정안에 있었으나 정부 반대로 삭제됐다.

중소기업계는 개정안이 미흡하다며 불만이다. 일각에선 생계형 적합업종 법제화까지 추진할 움직임도 있다.

이태훈/장창민/이민하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