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이 올해 불확실한 경영 환경에서도 사상 최대 투자에 나서는 것은 그룹의 새 성장엔진을 찾기 위해서다.

SK는 과거 정유·통신사업이 주축이었다. 큰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도 매년 안정적으로 수익을 냈다. 그러다 보니 성장이 정체됐다. 기업가치(시가총액)가 청산가치에도 못 미치는 기업이 속출했다. 비교적 최근 뛰어든 반도체 사업도 D램 분야에서는 삼성전자와 함께 양강 체제를 구축했지만 성장성이 큰 낸드플래시 분야에선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모험해야 기회"…SK, 기업 인수에 5조 투자
SK의 올해 투자 초점은 이런 약점을 보완하는 데 맞춰져 있다. SK는 국내외 미래 성장동력 발굴 차원에서 17조원의 투자 중 4조9000억원을 기업 지분 인수에 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SK는 “그룹의 신성장엔진을 확보하고 성장을 가속화하는 역할을 위해 수펙스추구협의회(최고의사결정 기구) 산하에 전략위원회를 신설한 만큼 주력 계열사의 전략적 투자도 적극적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략위원회 위원장은 조대식 수펙스 의장이 겸한다. 그룹 차원에서 신사업에 힘을 쏟겠다는 의미다.

계열사별 투자계획도 미래 먹거리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연간 기준 사상 최대인 7조원을 투자한다. 투자는 주로 10나노미터(nm·1nm=1억분의 1m)급 D램과 72단 3D(3차원) 낸드플래시에 집중된다. 두 품목 모두 최첨단 제품이다. D램은 물론 낸드 분야에서도 삼성전자에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SK이노베이션도 올해 최대 3조원을 투자하면서 투자 대상을 전기차 배터리, 배터리 분리막, 석유화학 등 비(非)정유 부문에 집중하기로 했다. 유가만 쳐다보는 천수답식 사업구조로는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SK이노베이션은 이 밖에 2조원가량으로 추정되는 중국 석유화학기업 상하이세코 지분 인수전에도 뛰어들었다. 상하이세코는 영국 BP가 50%의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며 중국 시노펙(30%)과 상하이석화공사(20%)가 나머지 지분을 갖고 있다. 이 중 BP가 보유 지분 전량을 매물로 내놨다. SK는 오스트리아 보레알리스, 스위스 이네오스와 경합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상하이세코 지분 인수는 SK이노베이션이 밝힌 3조원 투자 계획에는 포함돼 있지 않다. 상하이세코를 인수하면 SK이노베이션의 올해 투자 규모는 5조원가량으로 늘어나게 된다.

SK텔레콤도 향후 3년간 5조원을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사업에, 6조원을 5세대(5G) 네트워트에 투자하기로 했다. SK텔레콤은 과거 한국을 대표하는 정보기술(IT) 기업이었지만 최근에는 이런 위상이 많이 약해졌다. 휴대폰 사업이 정체되면서다. SK텔레콤이 미래 핵심 사업으로 꼽히는 4차 산업혁명 관련 투자를 대폭 늘리는 이유다.

SK는 투자와 함께 고용도 늘리기로 했다. 올해 대졸 신입사원 2100명을 포함해 총 8200명을 뽑기로 했다. 작년에는 8100명을 뽑았다.

올해 투자 규모가 작년보다 20%가량 늘어나는 것에 비해 고용 증가는 미미한 수준이란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불확실한 경영 환경, 60세 정년 연장, 노동력 투입이 적은 장치산업 중심의 사업구조 등을 감안할 때 채용 규모를 줄이지 않고 오히려 늘리는 것은 상당히 적극적인 행보로 보고 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