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급형 시장 선점한 삼성·LG와 정면승부 쉽지 않아

"스마트폰은 한 손으로 조작이 가능해야 한다"

애플 창업자 고(故) 스티브 잡스는 '한뼘폰'을 고집했다.

스마트폰 화면 크기가 날로 커지는 와중에도 그의 유작 아이폰4s가 3.5인치에 머무른 이유다.

잡스가 떠난 뒤에도 애플은 무리하지 않았다.

경쟁사 삼성전자는 물론 각국 제조사들이 5인치대 패블릿(대화면 스마트폰)으로 달려가고 있을 때도 후속작 아이폰5는 고작 0.5인치 커진 4인치에서 멈췄다.

물론 대세를 거스르진 못했다.

애플은 2014년 화면 크기를 부쩍 키운 아이폰6(4.7인치)와 아이폰6 플러스(5.5인치)를 출시, 사상 최대의 실적을 써내며 전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으로 우뚝 섰다.

시장에서는 애플이 잡스의 망령을 이겨냈다고 풀이했다.

보급형 시장도 대화면폰이 주름잡는 지금, 그런데 왜 애플은 다시 4인치로 돌아선 걸까.

10일 국내 출시된 아이폰SE는 아이폰5s와 화면 크기는 물론 디자인까지 같다.

애플은 아이폰SE의 출시 배경에 대해 한 손으로 쓸 수 있는 '한뼘폰'에 대한 수요를 노린 것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아이폰 사용자의 약 40%는 아직도 '4인치 아이폰'(아이폰5·5s)을 쓰고 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적으로 부는 중저가 스마트폰 바람이다.

좀처럼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는 애플로선 급성장하는 보급형 시장에 다시 도전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제품군을 다양화하면 애플뮤직, 애플페이 등 애플 생태계를 굳건히 할 수 있는 것도 부수적인 효과다.

어찌됐건 아이폰SE의 가세로 국내 중저가 스마트폰 시장은 한층 요동칠 전망이다.

애초에 준비한 물량이 많지 않은 탓도 있지만, 국내 이동통신 3사가 지난달 28일부터 진행한 온·오프라인 예약판매는 이미 몇 곳에서 재고가 바닥났다.

아이폰SE의 매력은 당연히 '아이폰치고는 착한 가격'에 있다.

성능은 아이폰6s와 대동소이하면서도 실구매가는 아이폰6s보다 30만원이나 싸다.

16GB 모델의 경우 이동통신사의 공시지원금과 추가지원금을 받으면 최저 실구매가는 약 41만2천원(LG유플러스), 64GB 모델은 약 54만2천원까지 내려간다.

지원금 대신 '요금할인 20%' 제도를 이용하면 더 낮출 수 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아이폰SE는 아이폰6s의 4인치 버전으로 보면 될 만큼 최첨단 성능을 자랑한다"면서 "4인치 아이폰 마니아층은 물론이고, 아이폰이 고가여서 구매를 망설였던 잠재 수요자까지 움직인다면 예상보다 큰 인기를 끌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찌감치 다양한 중저가 모델을 포진한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안방 주자들의 텃세가 만만치 않아 실제 출시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특히 가격 경쟁력에서 삼성이나 LG 제품들보다 훨씬 떨어지기 때문에 '보급형 아이폰'이라는 메리트가 약발을 못 낼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아이폰SE보다 저사양이지만 실제로 삼성전자가 아이폰SE 국내 출시에 앞서 내놓은 중저가폰 2016년형 갤럭시J7과 갤럭시J5의 실구매가는 각각 8만원, 3만원대. LG전자의 X스크린은 지난 4일 기준으로 아예 공짜폰이 됐다.

프리미엄급 성능을 자랑하는 삼성전자 2016년형 갤럭시A7도 실구매가는 22만원대로 아이폰SE로선 가격 승부를 벌이기는 녹록지 않다.

이동통신업계 관계자는 "많이 팔리면 좋겠지만, 가격 조건 등을 봤을 때 국내 이동통신 3사 모두 아이폰SE에 큰 기대를 하고 있지 않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고상민 기자 goriou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