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너무 몸 사려…국책銀다운 책임감 보여라"
“요즘 산업은행이 시중은행보다 더 리스크 관리에 신경씁니다.” “산업은행이 기업 구조조정과 관련한 방향을 잡아주지 않으니 혼란스럽습니다.”

시중은행 임원들이 산업은행에 대해 쏟아놓은 쓴소리다. 이들은 STX와 동양 등 중견기업이 줄줄이 쓰러지는 마당에 정책금융기관인 산업은행이 과거처럼 팔을 걷어붙이고 구조조정에 나서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시중은행들의 산업은행에 대한 불만은 STX그룹 사태 때부터 불거져 나왔다. 산업은행은 지난 2월 STX팬오션 인수를 위해 예비실사까지 했지만 두 달 뒤인 4월 인수를 포기했다. 시장에 인수 기대감만 심어주고선 방향을 틀어버렸다. 이 과정에서 시장참여자와 다른 채권단의 불신은 커졌다.

채권단 간의 의사 결정도 더뎠다. 산업은행과 금융당국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정책금융기관인 만큼 금융당국과 협조해 기업 지원 여부와 방향, 지원 규모 등을 결정해야 하는데 산업은행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금호아시아나그룹 구조조정 때처럼 산업은행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채권은행별 분담액을 정하고 속도를 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을 전혀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최근 법정관리에 들어간 동양그룹 계열사와 관련해서는 여신 회수에 적극 나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산업은행은 최근 6개월간 동양시멘트로부터 110억원의 단기 일반대출을 상환받았다.

한진해운 영구채 보증을 둘러싸고도 마찬가지다. 은행들은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조차 소극적인데 어떻게 선뜻 보증을 결정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러다 보니 시중은행들은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그저 자신들만 걱정할 뿐 앞장서서 기업을 살리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불만이 많다. 시중은행의 다른 임원은 “정부 지원을 받는 산업은행조차 기업 살리기에 소극적이니 주주가 있는 시중은행들이 먼저 동참하긴 힘들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의 이 같은 모습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던 ‘민영화’와 박근혜 정부가 강조한 ‘정책금융기관’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일으키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정책금융기관으로 돌아가자니 이명박 정부 5년간 민영화를 위해 수익성을 추구하고 리스크를 관리하던 습성이 남아 있다는 설명이다.

산업은행 측도 할 말은 있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나라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소명의식에서 기업 구조조정에 나섰지만 이후 ‘부실기업에 과도한 지원을 했다’는 이유로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는 것이다. 또한 기업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 섣부르게 자금을 지원하면 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산업은행 고위 관계자는 “정책금융기관이라도 정부의 재정 낭비는 최소화해야 한다”며 “산업은행이 정책금융을 수행할 의무는 있지만 대기업을 무조건 살리고 봐야 한다는 구시대적 발상에선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