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과천정부청사에서 만난 농림수산식품부 간부들은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의 발언이 사실이냐'고 기자에게 물었다. 지난 22일 최 회장이 충남 태안에서 기자들과 만나 "농협 신 · 경분리는 시간을 갖고 농협 스스로 추진하겠다"고 한 발언의 진의가 뭔지 도통 알 수 없다는 투였다.

최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신 · 경분리는 정부가 시간을 정해놓고 밀어붙일 게 아니라 농협 스스로 추진할 일이며,외부에서 몰아가서는 안 된다. " 농협은 정부 산하기관이 아니다는 발언도 토해냈다. 역대 중앙회장들이 비리혐의로 줄줄이 구속되면서 농협개혁의 주도권을 사실상 정부에 빼앗겼지만 신 · 경분리만큼은 더 이상의 정부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이 같은 발언이 전해지자 농식품부는 발끈하고 나섰다. 장태평 농식품부 장관은 25일 신 · 경분리는 농협 자율로 해서는 안 된다고 못박았다. 그는 "농협이 신 · 경분리를 비롯한 내부 개혁을 수십년간 스스로 못했기 때문에 정부가 시작하게 된 것"이라며 "정부는 농협을 몰아가려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자율적으로 신 · 경분리를 추진하겠다는 최 회장의 발언을 정면으로 뒤집은 것이다.

장관까지 나설 정도로 농식품부가 발끈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농식품부는 지난해 말 신 · 경분리 등 농협 개혁의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민관 합동기구인 농협개혁위원회를 만든 뒤 각계 의견을 수렴해 지난 3월 말 초안을 내놨다. 내년까지 농협 신 · 경분리를 마무리짓는다는 게 초안의 내용이었다. 이 과정에서 농협중앙회에 자체 신 · 경분리안을 제출하라고 수차례 요청했지만 중앙회는 한 번도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게 농식품부의 설명이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농식품부 내에서는 농협 신 · 경분리가 또다시 '유야무야'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농협중앙회의 반발이 자칫 정치권의 개입,농민단체의 반발이라는 복잡한 이해관계가 끼어들 빌미를 제공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진정 농협개혁을 하고자 한다면 농협중앙회는 '농협은 순수 민간조직'이란 원론적 주장보다 자체 개혁안을 서둘러 제시하고 정부와 허심탄회하게 머리를 맞대야 하지 않을까. 합당한 이유 없이 '자율'만 외친다면 개혁에 저항하는 세력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

이태명 경제부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