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 인출사태 여부 주목

"미국이 진정 민간 상업은행을 국유화할 것인가?"

지난 20일 뉴욕주식시장에서 씨티은행과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대한 국유화 우려가 확산, 주가가 급락하면서 이제 미국 은행의 국유화 논란은 시장 일부의 풍문을 넘어서 시장 전체를 짓누르는 강력한 '악재로 부상했다.

이미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은행을 국유화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확산된 지 오래이며, 백악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금융불안에 따른 국유화 관측은 누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미 이들 두 은행의 주가가 폭락할 만큼 폭락했기 때문에 이제는 '뱅크런' 등 고객들의 예금이탈 징후를 예의 주시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 은행 국유화론 확산 일로
은행 국유화론은 이미 경제전문가들 사이에 대세론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20일 주식시장의 논란은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이 새로운 금융안정계획을 발표한 이후에 발생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미국 정부가 아무리 금융불안을 잠재우고 은행을 지원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아도 시장의 불안감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가이트너 장관이 내놓은 금융안정계획은 발표 당일부터 세부 내용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당일 주가가 폭락하는 등 이미 시장으로부터 '낙제점'을 받은 상태다.

20일 시장의 논란은 미국 상원 금융위원회의 크리스토퍼 도드 위원장이 블룸버그와 가진 인터뷰가 불을 지폈다.

도드 위원장은 이날 인터뷰에서 단기적으로 씨티와 BOA가 국유화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해 씨티그룹의 주가가 18년 만에 최저, BOA는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들 두 은행에 대한 '국유화 필요' 발언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닥터 둠'으로 통하는 뉴욕대 누리엘 루비니 교수는 미국 정부가 은행을 국유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오래전부터 펼쳐왔고, 작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도 최근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왜 은행을 국유화하면 안되는가?"라면서 정부의 과감한 조치를 주문하기도 했다.

미 공화당의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은행과 금융권에 부실자산이 너무 많이 퍼져 있는 상황이어서 1년 전에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그 무언가를 해야 한다"라면서 "은행 국유화 카드도 테이블에서 내려놓지 않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도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신속하고 질서있는 구조조정을 위해 정부가 한시적으로 일부 금융기관을 국유화하는 게 필요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 주가·예금 동향이 '아킬레스건'
지난 20일 논란의 주인공인 씨티그룹 주가는 1.95달러, BOA의 주가는 3.79달러로 마감됐다.

이미 이들 두 은행의 주가가 담배 한 갑의 가격에도 못 미칠 만큼 떨어진 상태여서 앞으로 이들의 주가는 더 이상 의미 있는 시장의 지표 역할을 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의 로버트 기브스 대변인이 민간 금융시스템이 올바른 길로 갈 것으로 믿는다면서 진화에 나섰고 케네스 루이스 BOA 최고경영자(CEO)도 더이상 자금지원이 필요치 않다면서 큰소리를 쳤지만 시장의 불안감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뉴욕타임스는 당사자들의 잇단 부인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은 이들 은행이 막대한 자본투입이 필요할 것으로 믿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자본투입은 곧 기존 주주들의 주주 가치를 훼손시켜 주가가 하락하고 이는 결국 정부의 국유화로 이어지면서 기존 주주들은 주식을 내다 파는 악순환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들 은행의 계속되는 주가 폭락이 오바마 행정부에 부담을 주고 있지만, 은행의 아킬레스건은 결국 '예금'이라고 지적했다.

'뱅크런(예금 인출사태)' 등 불안감을 느낀 고객들이 예금을 인출하기 시작하면 위기가 확산되고 즉각 정부가 개입해 국유화 등 근본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아직 이들 두 은행에서 예금인출의 징후는 나타나진 않고 있으나, 두 은행의 경영진이 촉각을 곤두세우며 예금잔고를 예의주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미 연방정부의 은행감독관으로 일했던 게리 타운젠드는 "은행은 신뢰를 먹고 사는데 새 재무장관으로부터는 나온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서 "우리는 단지 혼란만 얻고 있을 뿐"이라고 개탄했다.

(뉴욕연합뉴스) 김지훈 특파원 hoon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