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매물이 금리 인하 효과를 퇴색시켜 증시가 나흘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금리 인하 기대감이 연일 지수 낙폭을 줄이는 데 기여해온 탓에 호재로서의 영향력이 줄어든 상황에서 옵션만기일을 맞아 대규모 프로그램 매물까지 쏟아져 증시는 힘을 내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일부 경기지표에서 회복 조짐이 감지되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잇단 금리 인하가 본격적으로 효과를 발휘하려면 시간이 필요한 만큼 박스권 장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연일 장 후반 낙폭을 줄이는 '전약후강'의 모습을 보이며 하방경직성을 강화하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외국인 선물 매도로 프로그램 매물 압박

금융통화위원회가 12일 기준금리를 시장 기대대로 0.5%포인트나 낮췄지만 코스피지수는 10.34포인트(0.87%) 내린 1179.84에 장을 마쳤다. 나흘 동안 지수하락률이 2.51%에 그친 게 그나마 금리 인하의 '공'이란 평가다.

이날 장 초반부터 외국인의 선물 매도로 베이시스(현 · 선물 간 가격차)가 악화되면서 대량의 프로그램 차익거래 매물이 나오며 증시를 압박했다. 프로그램 순매도 규모가 커지자 오후 1시께 코스피지수는 1162선까지 밀렸다.

외국인이 선물을 4724억원어치 팔아치우면서 차익거래 순매도는 지난해 5월 9일(7079억원) 이후 최대인 5246억원에 달했다. 여기에 비차익거래 순매도까지 가세해 5865억원의 프로그램 매물이 쏟아졌다. 심상범 대우증권 연구원은 "외국인 선물 매도가 차익거래 물량 출회를 자극했고,옵션만기일을 맞아 옵션 연계 물량도 1200억원 넘게 나와 지수를 끌어내렸다"며 "마감 동시호가 때 증권과 연기금이 비차익거래를 통해 매수세를 보이면서 지수 낙폭이 다소 줄었다"고 설명했다.

반면 코스닥지수는 2.51포인트(0.65%) 오른 385.92로 마감,사흘째 상승세를 이어갔다. 기관이 200억원을 순매수하면서 힘을 실었다. 오는 27일 장 마감 후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스탠더드지수로 편입된다는 소식에 태웅이 7.32% 급등해 눈길을 끌었다.

◆금리 인하 효과 시간 필요

증시 일각에선 안 좋은 뉴스에 섞여 나오고 있는 회복의 신호를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오태동 토러스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재고증가율이 지난해 10월 17%에서 12월엔 7%대로 뚝 떨어졌고,올 1월 -30%를 기록한 수출도 이달은 10일까지 잠정집계 결과 감소폭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며 "이처럼 최악의 상황이 지나가고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하는 신호가 잇따르는 가운데 금리 인하가 가세하고 있어 경기 저점이 예상보다 앞당겨질 전망"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여전히 신중한 입장이 우세한 상황이다. 김영일 한국투신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은 "이달 들어 경제지표에서 미약하나마 개선 기미가 보이고 있지만 놀랄 만한 큰 폭의 개선은 아니다"며 "금리 인하로 시중에 자금이 돌아 효과가 나타나려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인 만큼 박스권을 탈출하려면 좀 더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정광 LIG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금리 인하의 이유가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지고 있기 때문이란 점을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동평균선으로 보면 단기추세선인 20일선(코스피지수 1160)과 경기선인 120일선(1220) 사이에서 증시가 방향성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며 "단기추세는 살아 있지만 경기 침체에 대한 부담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금리 인하 수혜주로 꼽히는 건설업종은 이날 2.69% 빠져 '뉴스에 팔아라'라는 증시 속설을 입증시켰다. 조윤호 대신증권 연구원은 "최근 금리 인하와 정부 규제 완화 기대로 선전하던 건설주들이 이날 뉴스가 나오자 차익 실현 매물탓에 주저앉았다"며 "건설업황 회복 여부가 여전히 불확실하기 때문에 정책 기대만으론 탄력을 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은행주는 금리 인하에 따른 예대마진 악화 우려로 약세를 보였다. 구용욱 대우증권 연구원은 "은행권 대출금리의 기준인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도 기준금리 인하에 맞춰 하락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돼 올 상반기엔 은행의 실적 부진 압박이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경영 기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