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회계업계가 변혁기를 맞고 있다. 미국 엔론 스캔들로 위기에 놓인 아더앤더슨의 해외 법인들이 다른 회사와의 합병을 통해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이 여파는 국내에도 미치고 있다. 한국아더앤더슨그룹은 최근 삼정KPMG와 합병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최근 분식회계 혐의로 금융당국이 대형 회계법인들을 중징계 조치한 점도 업계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회계법인들은 '투명성 확보'라는 대전제 아래 '환골탈태' 해야 한다는 요구를 업계 안팎에서 받고 있다. 변신을 꾀하는 국내 회계법인의 현황과 나아갈 방향을 3차례에 걸쳐 진단해 본다. ----------------------------------------------------------------- '회계법인의 역사는 합병의 역사'다. 그동안 합병이 활발히 이뤄졌고 이를 통해 대형 법인들은 몸집을 불려왔다. 엔론사태로 촉발된 한국아더앤더슨그룹과 삼정KPMG의 합병 선언은 국내 회계시장의 경쟁구도를 바꿔 놓을 수도 있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국내 회계업계는 현재 5개 다국적 회계법인과 관계를 맺은 '빅5' 체제를 이루고 있다. 삼일은 세계 최대 회계법인인 PwC(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와 제휴를 맺고 있다. 안진은 아더앤더슨, 안건은 DTT(딜로이트 투시 토머스)와 손을 잡고 있다. 영화는 언스트&영, 삼정은 KPMG가 제휴사다. 여기에 안건에서 독립한 하나회계법인이 DTT의 제휴법인으로 활동 중이다. 삼일은 연 매출 1천6백63억원(2000회계연도 기준)으로 1위를 달리고 있다. 다음은 안진 안건 영화 삼정의 순이다. 업계에서는 2위와 5위 법인인 안진과 삼정의 합병이 성사될 경우 기존 1강(삼일)체제에서 2강(삼일-안진+삼정) 2중(안건-영화)체제로 판도가 바뀔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전체 시장의 30% 가량을 점유하고 있는 삼일에 이어 합병법인의 시장점유율은 2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합병 성사 여부가 불투명한 점도 없진 않다. 합병을 통해 엔론사태로 실추된 이미지를 만회하겠다는 안진과 달리 삼정은 자신보다 외형이 큰 안진을 상대로 협상을 벌여야 한다. 이 점 때문에 양측의 주도권 다툼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업계에서는 안진과 삼정이 합병을 통해 외형은 키울 수 있지만 시너지 효과를 얼마나 거둘지는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미국과 유럽법인이 배제된 국내 법인간의 합병은 업계 전체에 큰 여파를 주지는 못할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모회계법인 고위 관계자는 "아더앤더슨(안진)은 엔론사태로 공신력이 떨어져 고객들이 이탈하고 있다"며 "KPMG(삼정)와의 합병이 어느 정도의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안진은 이미 포항제철 등 대형 고객을 경쟁사에 빼앗겼다. 미국 아더앤더슨이 최악의 사태를 맞이할 경우 국내 파트너의 입지가 좁아진다는 점도 배제할 수 없다. 또 다른 회계법인 관계자는 "삼정과 안진이 전 부문에 걸쳐 통합을 이루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안진의 회계사중 일부를 삼정이 인수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내 회계법인간 '합종연횡', 회계사들의 '이합집산'은 앞으로 활발해질 전망이다. 삼정과 안진의 합병이 성사되지 않을 경우 안진은 다른 회계법인과 짝짓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지난 97년 쿠퍼스 앤드 라이브랜드(C&L)와 프라이스워터하우스(Pw)가 합병한데 이어 국내 제휴선인 삼일(C&L)과 세동(Pw)도 합병을 추진했었다. 그러나 양측의 입장 차이로 불발에 그쳤다. 당시 PwC는 삼일과 제휴관계를 유지키로 해 세동은 안진과 합병했다. 삼정과 안진의 합병으로 국내시장이 2강구도로 전환될 경우에도 업계 판도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안건 영화 등도 다른 법인과 제휴 또는 합병 등을 통해 몸집을 키울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DTT가 하나회계법인을 새 제휴선으로 선택, 안건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분식회계를 둘러싼 소송이 잇따르는 것도 회계법인의 몸집키우기를 유도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