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의 내년도 사업계획의 특징은 △최악의 상황을 전제로 △이익과 유동성 확보를 최우선으로 하되 △돌발변수에 대비한 위기관리체제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특히 수출 비중이 높고 원자재 가격 등 외부 조건의 변화에 따라 매출과 이익이 크게 좌우되는 제조업체에서 이같은 경향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 최악지표 설정 =삼성은 그룹의 싱크탱크인 삼성경제연구소가 제시한 가이드 라인보다 훨씬 혹독한 기준을 적용해 사업계획을 짜고 있다.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를 비롯해 삼성전기 삼성석유화학 등은 달러화에 대한 원화의 평균환율을 1천1백원, 금리는 8%(3년만기 회사채 기준 수익률)를 기준으로 사업계획을 작성중이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심각한 침체 국면'이 전개될 경우(가능성 70%)를 전제로 제시한 내년도 평균환율은 1천2백80원, 금리는 6.2%였다. GDP(국내총생산) 성장률도 연구소는 3%로 내다봤지만 삼성 계열사들은 1.2%라는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다. 삼성전자는 D램 가격이 내년도 상반기 중 회복되기 어렵다고 판단, 1천원대의 환율 상황에서도 이익을 낼 수 있는 사업구조를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상대적으로 실적이 좋은 삼성SDI도 환율 1천1백50원과 금리 7.4%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삼성코닝도 환율 1천1백15원, 금리 7.4%를 전제로 사업계획 수립에 들어갔다. 삼성 관계자는 "최악의 조건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체질개선을 해야 실제 상황이 좋아지면 이익이 커지는 '플러스 섬(plus-sum)' 게임이 된다"고 설명했다. LG도 LG경제연구원이 제시한 내년도 환율 1천2백60원, 금리 6.3%보다 나쁜 조건에서 사업계획을 짜고 있다. LG전자와 화학은 환율 1천2백60원, 금리 6.5% 안팎에서 사업계획을 수립중이며 LG상사도 환율 1천2백50원, 금리 7%를 기준으로 삼았다. 현대차도 환율 1천1백50원, 금리 6%로 기준을 설정해 사업계획을 세우고 있다. ◇ 돌발변수 대비 =기업들은 세계 경기의 불확실성이 갈수록 커지는 만큼 어떠한 조건 하에서도 경영이 차질을 빚지 않도록 여러가지 시나리오를 마련하고 있다. 삼성 각 계열사는 경기 반등과 침체의 장기화 등 두가지 상황을 염두에 둔 시나리오 경영계획을 작성중이다. 경기 반등보다는 침체의 장기화와 복합불황 쪽에 무게를 두고 추가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경영 변수들을 상정해 대비토록 한다는 계획이다. LG화학 등 LG 계열사는 미국 테러사태의 여파가 장기화될 경우 매출과 수익이 각각 10%와 5% 가량 감소할 것으로 보고 두가지 시나리오를 놓고 사업계획을 수립중이다. LG화학 경영관리담당 서기원 부장은 "경기 부진과 맞물려 환율이 올라가면서 판매가 줄어드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이에 대비한 자금계획 등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 침체기에는 예상치 못한 상황 변화로 인해 기업의 존폐가 흔들릴 수 있는 만큼 확장보다는 안정적인 유지 전략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SK 전략기획팀장인 박석원 상무는 "환율은 워낙 변동이 심해 사업계획을 짤 때는 일단 내년도 변동 전망을 감안하지 않는다"면서도 "환율이 오르면 장부상 외화부채의 평가손 규모가 커지기 때문에 리스크 매니지먼트(위험관리)를 대폭 강화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