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27일 발표한 공적자금 비리 수사결과는 관련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어느 수준까지 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충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서민생활의 안정과 보호를 위해 공적자금을 기반으로 설치된 생계형 창업자금까지 빼돌려진 것으로 드러나 분노를 더해주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이같은 비리가 가능했던 데 대해 "감시체계가 부실한데다 금융인들의 도덕성이 땅에 떨어졌기 때문"으로 풀이하고 있다. 또한 나랏돈 보호에 앞장서야 할 정부투자기관마저 공공기금을 방만하게 운용,재정 부실을 초래한 경우가 많아 감독 강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검찰은 공적자금 등에서 빠져나간 돈 가운데 상당수가 은닉돼 있을 것으로 보고 피의자들의 재산을 끝까지 추적, 환수한다는 방침이다. ◇ 금융기관 불법 대출.횡령 =금융기관과 관련해 검찰이 적발한 손실액은 총 1조4천80억원에 달한다. 대표적으로 모 금고 대표이사 김모씨는 66명의 명의를 빌리거나 도용해 모두 3백1회에 걸쳐 2천4백여억원을 불법 대출, 금고에 손해를 끼쳤다. 또 지난 4월에는 지난해 6월 결산 때 2천여억원 상당의 자산을 분식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모 증권 부산중앙지점 김모(39) 전 차장 등은 휴면계좌 이용, 전산 조작 등의 수법으로 고객예탁금 7백64억원을 빼돌린 뒤 주식투자 등에 유용했다가 적발됐다. 서대전 모 신용협동조합 김모(42) 상무 등은 조합 여유자금 73억원으로 주식 투자를 했다가 모두 탕진했다. 또 퇴출된 금융기관이 마치 예금이 남아 있는 양 속여 예금보험공사를 상대로 예금 대지급 소송을 제기하는 이른바 '소송 사기범'도 10여명 적발됐다. 이같은 소송 사기의 규모는 모두 2천4백40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돼 공적자금이 새나간 또 다른 사례로 지적되고 있다. ◇ 방만한 '나랏돈' 운용 =검찰이 포착한 공공기금 편취 액수는 총 5천2백억원 규모. 박모(45)씨 등은 공장 부지에 대한 임대차 계약서를 위조하는 방법 등으로 신용보증기금으로부터 창업대출 보증서를 발급받아 은행에서 10여억원을 대출받는 수법으로 빼돌리다 대구지검에 적발됐다. 신용보증기금이 정부로부터 2천억원을 지원받아 조성한 생계형 창업특별보증기금은 이같은 보증 사고로 현재 1천3백여억원이 유출, 기금 부실화 위기를 맞고 있다. 주택을 임차하거나 취득하려는 서민을 위해 조성된 주택금융신용보증기금 역시 현재 2천2백여억원이 보증 사고로 변제돼 고갈 위기를 맞고 있다. 정부가 공적자금을 기반으로 설치 운용중인 61개 공공기금 대부분이 이같은 방식으로 손실을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 ◇ 대책 =검찰은 우선 불법으로 조성된 비리범들의 은닉 재산을 쫓는데 중점을 둘 방침이다. '감옥에 가더라도 숨겨둔 재산만 있으면 된다'는 식의 도덕적 해이를 뿌리 뽑겠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와 함께 예금보험공사 등이 효과적으로 공적자금을 회수할 수 있도록 수사 자료를 적극 제공키로 했다. 검찰 관계자는 "공적자금이나 공공기금을 '주인 없는 돈'으로 인식할 정도로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실무자를 중심으로 수사협의체를 구성해 국민이 납득할 만한 수준의 수사 성과를 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대인 기자 big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