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로 자욱한 베이징에서 구멍가게 정문을 비집고 나온 장사진(長蛇陳)과 마주쳤다.

뱀 머리가 무엇인지 궁금해 앞쪽으로 달려갔다.

그곳에 한 젊은이가 컴퓨터 프린터에서 나온 쪽지를 손님에게 건네주고 있었다.

복권(綵票.차이퍄오)이었다.

손님이 번호를 부르면 젊은이가 컴퓨터에 이를 입력, 번호가 적힌 복권을 내준다.

"번호 하나에 2위안(1위안=약 1백50원), 1등 당첨금 5백만위안, 최고 당첨금 1천5백만위안"이라는 선전문구가 벽에 걸려 있었다.

중국 주요 도시에 불고 있는 복권 열풍의 현장이다.

지금 중국에서 가장 활발한 산업을 꼽으라면 단연 복권이다.

중국인들은 운 좋으면 신세를 고칠 수 있다는 일확천금의 기대감으로 복권판매대를 찾는다.

중국사회조사사무소(SSIC) 통계에 따르면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廣州) 등 3개 대도시 주민의 48.5%가 주기적으로 복권을 사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국 복권은 복지기금 조성을 위한 복리복권(福利綵票)과 체육 발전을 위한 체육복권(體育綵票) 두 종류로 지난 1987년 등장했다.

별다른 인기를 끌지 못했던 이들 복권은 지난 99년 컴퓨터 판매방식의 등장과 함께 서민의 일상생활로 파고들었다.

작년 복권판매액은 약 1백60억위안으로 전년보다 54%가량 늘었다.

지난 87~99년 총 판매액(약 5백4억위안)의 32%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SSIC는 오는 2010년 복권판매량이 8백46억위안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복권산업이 번창하면서 각 지방별로 복권발행이 이어지고 있다.

베이징의 경우 "베이징펑차이(北京風綵)" 복권이 지난 6일 발행되기도 했다.

이 복권은 발행일 무려 2백46만위안어치가 팔려 복권 하루 판매량으로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중국 재정부는 곧 올림픽복권, 축구복권 등을 추가 발행할 계획이다.

음식점 잡화점 등은 복권판매권을 따낼 경우 손님이 부쩍 늘어난다는 점을 감안, 복권 판매권을 따내기 위해 혈안이 돼있다.

중국의 복권열풍은 정부가 의도한 것이기도 하다.

정부는 "미소(微笑)납세" "무통(無痛)세수"라는 복권의 특성을 활용, 쉽게 국민의 돈을 거둬들이고 있다.

중국 복권판매의 30~40%는 공익자금 및 세금으로 국고에 들어간다.

약 20만명에 달하는 고용효과도 노리고 있다.

중국은 전국 4만여명에 달하는 판매대 근무 직원을 모두 씨아강(下崗.실직) 근로자들로 채울 계획이다.

정부는 또 당첨금으로 지급된 돈 중 72.3%는 다시 소비로 지출돼 복권이 내수부양에 어느 정도 기여한다는 점도 고려하고 있다.

언론도 복권 붐을 조성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천바오(晨報) 완바오(晩報) 등 베이징의 주요 신문들은 복권관련 기사를 거의 매일 쏟아내고 있다.

"이번 주 1천5백만위안의 주인공은 당신일 수 있다" "인력거꾼에게 찾아온 5백만위안의 행운" 등 유혹적인 제목이 중국인 특유의 도박심리를 끊임없이 자극한다.

"어지간해서는 지갑을 열지 않는 중국인들이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에 끌려 푼돈을 정부에 바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중국 서민들은 복권 한 장에서 탈출구를 찾으려 한다.

그들의 투기 심리와 언론의 선정적 보도가 맞물려 중국 복권산업은 올해도 최고 활황세를 구가할 전망이다.

베이징=한우덕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