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동결이 과연 가능한가.

정부가 8일 국제 유가 상승분을 국내 가격에 반영하겠다고 발표했다가
국내 유가를 현수준에 동결키로 말을 뒤집은 것과 관련해 논란이 일고 있다.

물론 정부 전망대로 오는 27일 석유수출국기구(OPEC)에서 감산합의가
이뤄져 유가가 하향 안정세를 보일 수도 있다.

문제는 그렇지 않을 경우다.

국내 원유도입 물량의 70~80%를 차지하는 중동산 원유의 기준이 되는
두바이유의 경우 3월 1~7일 평균가격이 배럴당 26.74달러.

정부가 당초 예상했던 올해 평균기름값 21.5달러보다 무려 5달러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국내 기름값에는 변화가 없다.

정부가 지난 2일부터 석유류에 적용되는 탄력세율을 내려 원유가 상승분을
흡수했기 때문이다.

이로인해 매달 8백억원가량 세수가 줄고 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앞으로도 두바이유 가격이 25~26달러 수준을 유지할 경우다.

정부 발표대로라면 이때도 각종 정책수단을 동원해 기름값을 안정시켜야
한다.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가장 편리한 정책수단은 2차 탄력세율 인하다.

실제로 7일 열린 유가관련 긴급대책회의에서도 탄력세율 인하는 유력한
정책수단으로 검토됐다.

그러나 실제 세율인하가 단행되면 연간 세수 감소가 2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장에 실행하긴 쉽지만 이 정책이 초래할 여파가 만만찮다.

다음으론 비축유 방출이 거론된다.

정부가 비축해둔 5천6백만배럴의 원유를 풀면 최대 30일간 버틸 수 있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비축유 방출은 미국 등 주요 석유소비국과의 협의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쉽게 결정하기 어렵다.

아울러 3천8백억원 규모의 유가완충자금을 푸는 방안도 얘기된다.

정부가 국내 기름값을 동결한 뒤 국제유가와의 차액을 완충자금으로 정유사
에 보전해 주는 방법이다.

산자부 관계자는 이 방안은 최후단계에서나 검토될 수 있는 수단이라고
말했다.

결국 정부가 국제유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국내 유가를 동결할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얘기다.

이에따라 국제유가 흐름과 무관한 유가동결정책은 에너지소비 심리만
확대시킬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국제유가 상승에 대응하는 최선의 수단은 다름아닌 석유수요 억제정책인데
정부가 거꾸로 가고있다는 주장이다.

민간경제연구소 관계자는 "모든 국제유가 인상분을 정부가 인위적인 정책
수단을 떠안겠다는 것은 사실상 에너지정책을 포기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측 주장대로 유가가 1달러 오를때 물가상승이 0.17%에 불과하고
무역수지 악화요인이 10억달러 정도라면 과감히 기름값을 현실화해 석유수요
를 줄이는게 옳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 김수언 기자 sookim@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3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