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경제와 기업들의 대외신용도가 떨어지면서 대형 인프라사업, 플랜트등
해외장기프로젝트에 주력해온 건설업체나 중공업, 종합상사들이 일본등
경쟁자들과의 수주경쟁에서 밀리고있다.

더욱이 해외건설 플랜트의 주력시장인 동남아 국가들이 통화위기이후
공사발주를 연기하거나 취소하고 대금지급을 늦추는 사례가 늘고있어
향후 시장전망도 극히 불투명하다.

해외건설, 중공업, 종합상사등이 해외공사를 따내기위해선 발주측에
자체 자금을 빌려주거나 외국금융기관의 자금을 알선해줘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동안 우리업체들은 국내은행보다 조건이 유리한 미국계은행이나
일본종합상사들로부터 자금을 직접 조달하거나 발주처에다 이들의 자금을
알선해주는 방식으로 장기대형 공사를 따냈다.

일부업체들은 발전소등의 공사를 끝낸후 운영까지 직접 맡아주는 조건으로
공사를 맡기도했다.

그러나 최근들어 국내대기업들의 잇단부도와 국내금융위기로 외국계
은행들의 우리기업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면서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공사자금조달)을 못해 장기프로젝트를 포기하는
업체들이 속출하고있고 이미 따놓은 공사를 놓칠 위기에 놓인 업체도 있다.

현대중공업과 삼성물산관계자는 "외국계은행은 물론 그동안 한국의
건설업체들이나 종합상사에 비교적 우호적이었던 일본종합상사들까지 자금을
래를 기피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있다"고 말했다.

(주)대우 콸라룸푸르 지사관계자는 "현대 삼성 대우등은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그동안 한국의 대외신용도에 힘입어 현지에서 자금을 조달할수있었
던 중견건설업체나 엔지니어링업체들의 경우 최근들어 해외자금조달여건이
악화되면서 아예 수주경쟁을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전했다.

실제로 국내 모중견그룹이 추진해온 베트남의 5억달러상당의 플랜트사업은
베트남정부가 갑자기 자체 사업으로 돌리려고 하는 바람에 사업추진이
백지화될 위기에 놓여있다.

이 업계 관계자는 "베트남정부가 경영위기가 고조되고있는 한국기업에
장기사업을 맡기기보다는 조건이 다소 까다롭더라도 자금줄이 튼튼한
일본계로 제휴선을 바꾸려는 시도인 것같다"고 분석했다.

쌍용건설 싱가포르지사 관계자는 "공사를 발주하는 동남아국가들이
외환위기로 외국은행들의 불신을 받고있는데 공사를 수행할 한국업체들
역시 신용도가 신통치않기때문에 동남아공사에서 우리기업들은 경쟁자인
일본이나 미국, 유럽기업에 비해 이중고를 겪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싱가포르 무역관 관계자는 "최근 싱가포르 중앙은행이 한국기업들과
주로 거래하는 한국의 현지 진출금융기관들에 대한 전면적인 감사를 실시한
배경에는 한국기업들의 프로젝트진행능력에 대한 간접적인 점검의도가
깔려있었다"고 진단했다.

필리핀 인도 인도네시아등지의 발전소공사에 집중해온 한국중공업
현대중공업의 관계자들은 "수출입은행에서 자금지원을 해준다고하지만
한국계은행에 대한 발주처의 평판이 예전같지않아 수주경쟁에서 구조적으로
불리하다"면서 "장기프로젝트수주에는 국가신용도평가가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해외건설과 프랜트의 주력시장인 동남아의 향후 시장전망도 갈수록
어두워지고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우리건설업체들이 노려온 바쿤댐공사를 사실상 취소했고
수도권경전철의 추가사업도 무기연기시켰다.

콸라룸푸르 무역관측은 "말레이시아는 금년 환율상승분(달러대비
30%평가절하)을 상쇄시키기위해 각종공사의 해외발주를 대폭 줄일
것이 확실하다"고 내다봤다.

장기공사조건도 급격하게 나빠지고있다.

방콕 무역관 관계자는 "일부 업체들이 기성(공사 진행실적에 따른 대금)을
받지못해 자금융통에 고전하고있다"고 전했다.

공사수주와 함께 해외투자역시 자금조달이 힘들어 부진을 면치못하고있다.

30대 대기업그룹의 상반기 해외프로젝트 추진실적에서도 이런 추세가
뚜렸이 드러난다.

이들 대기업의 대형(1천만달러이상) 해외투자허가 건수는 95년도
23건에서 작년에는 2배이상 증가, 49건을 기록했으나 올해는 상반기중
20건에 그쳤다.

종합상사가 속한 7대그룹이 수행한 대형투자프로젝트는 95년
18억7천6백만달러에서 작년에 23억9천3백만달러로 43.5%나 급증했으나
올상반기중 허가금액은 7억9천1백만달러에 머물렀다.

< 이동우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