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디자인 전문회사 마노의 유숭만(38)사장.

어려서부터 그의 꿈은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었다.

그의 말대로 "항공기나 선박 등 운송기기 관련업종에 종사하는 주변사람이
많았던 덕에 어려서부터 이런 것들과 친했기 때문"이다.

당시만해도 장래가 불투명했던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기위해 그는 대학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했다.

또 졸업후에는 디자인의 본고장 이탈리아로 건너가 자동차와 요트 디자인을
공부했다.

귀국후 쌍용자동차에서 2년간 일하다 신사동에 사무실을 얻어 지금의
마노를 설립한 것이 지난 90년, 서른을 갓 넘겼을 때였다.

이런 그가 단 몇년만에 "자동차 디자인은 외국 업체에 맡기는 일"이란
통념을 완전히 깨뜨릴 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운영하는 마노는 대우자동차의 라노스, 쌍용자동차의 무쏘,
기아자동차의 크레도스와 포텐샤, 현대정공의 갤로퍼 등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들의 아웃소싱을 맡았다.

현재 진행중인 대우자동차의 A-100, 기아자동차의 KEV-6, 현대정공의
HP-1과 QA-4 등 신차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또 국내 업체들이 모터쇼에 출품한 "컨셉트 카"가운데 상당수는 이 회사가
디자인한 것이다.

유사장은 "설립된지 7년밖에 안된 마노가 이만큼의 실적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 운송기기 디자인이라는 전공분야외에는 눈을 돌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은 마노도 처음부터 자동차 디자인만 해온 것은 아니었다.

지난 90년 마노가 처음 문 열었을 때만해도 국내 자동차 메이커들의
아웃소싱은 전부 외국 회사의 몫이었다.

그는 신발이 닳도록 뛰어다녔지만 일거리를 따낼 수 없었다고 돌이킨다.

메이커들이 국내에 자동차 디자인 전문회사가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때였던 것이다.

이 때문에 처음 몇년간은 전자제품 디자인도 하며 CI(기업이미지통합)
작업도 맡아 먹고 살아야 했다.

그동안 자동차 부품 디자인도 하긴 했지만 자동차 디자인다운 디자인은
해보지도 못했다.

그래도 이 기간동안 빠듯한 매출을 쪼개 자동차 엔지니어링을 위한 설비
투자를 계속했고 그것이 지금은 큰 밑천이다.

기회가 찾아온 것은 지난 94년이었다.

자체 프로젝트였던 2인승 전기자동차 "시타(CITTA)"가 히트를 친 것이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됐고 국내 완성차 업체들도 이 작은 거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어 관심은 실력에 대한 인정으로 바뀌었고 일감이 쏟아져 들어왔다.

이후에는 자동차 디자인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모터쇼같은 행사를 앞두고는 맡은 일이 너무 많아 직원들이 몇달간을
밤낮없이 일하기도 했다.

이 해에 마노는 명실공히 자동차 디자인 전문회사로 다시 태어난 셈이다.

이후 매년 7~8명씩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를 충원, 지금은 정규직원 25명과
프리랜서 대여섯명을 합해 30여명 남짓한 대식구가 됐다.

회사 운영도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걸맞게 독특하다.

밖에서는 사장이지만 직원들은 그를 "실장"으로 부른다.

허물없이 대하기 때문에 직원들과 의사소통도 잘 된다.

프로들과 일하느니만큼 사내에 출근부도 없고 결재도 드문 일에 속한다.

컴퓨터에 의한 서류없애기와는 전혀 다른 개념의 페이퍼리스(paperless)인
셈이다.

유사장은 "성공이란 말은 아직 가당치 않다"며 "이제 겨우 자리잡은 정도"
라고 말한다.

그는 또 "국내 완성차 업체 입장에서도 국내 디자인 전문회사를 키워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며 "애정어린 지원을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 김용준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