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현대차 공장. 사진=현대차 제공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현대차 공장. 사진=현대차 제공
일본·프랑스 완성차 업체들이 잇따라 러시아 사업 철수 방침을 밝히면서 그룹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다른 나라 완성차 업체들과 달리 현지 시장 점유율이 높은 데다 투자액도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28일 니혼게이자이 등 외신에 따르면 일본 도요타는 지난 24일(이하 현지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 생산을 완전히 종료한다고 발표했다. 도요타는 현지법인을 매각하는 대신 임의청산을 통해 모든 생산과 판매망을 철수할 예정이다.

다만 이미 판매한 차량에 대한 사후서비스(AS)는 당분간 진행할 예정이다. 도요타는 지난해 러시아 공장에서 약 8만대의 차량을 생산했다. 도요타 전체 생산량의 약 1% 수준이다.

또 다른 완성차 업체 마쓰다도 러시아 사업 철수 방침을 밝히고 현지 합작사인 솔러스와 협의에 들어갔다. 2012년부터 러시아 현지 생산을 시작한 마쓰다는 올해 3월 부품 조달 불가능을 이유로 현지 생산을 중단했다.

앞서 지난 5월 프랑스 르노도 보유하고 있던 현지 자동차 회사 '아브토바즈' 지분 68%를 현지 업체인 러시아 국영과학연구소(NAMI)에 단돈 '2루블'(약 48원)에 넘겼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르노가 러시아 사업 개시 이후 현지에 투자한 금액만 3100억원가량이다. 수천억원 손실을 감내하고 러시아 사업을 접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셈이다.

도요타, 마쓰다, 르노 등이 이런 결정을 내린 데에는 각국 정부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입장과 보조를 맞추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최근 열린 유엔총회에서 일본, 독일, 프랑스 정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강제 동원령, 전술 핵 사용 가능성에 대해서 일제히 강도 높게 비판했다.

현대차그룹은 이들과 상황이 좀 다르다. 현지 시장점유율이 이들보다 높아 사업을 당장 포기하기에는 부담이 크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러시아에서 차량 37만7614대를 팔아 현지 업체(아브토바즈)를 등에 업은 르노-닛산에 이어 2위에 올랐다.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판매량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도 6%로 적지 않다.

여기에 최근 1~2년 사이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이 현지 시장 확대를 위해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 놓은 것도 일본, 프랑스 업체들과는 다른 점이다. 현대차는 2020년 옛 GM 공장을 인수했고 기아는 공장 개보수를 진행했다. 현대위아는 2019년부터 러시아 내 엔진공장 건립을 시작해 지난해 말부터 겨우 가동을 시작했지만 5개월 만에 셧다운(가동중단)됐다.

현대차그룹과 함께 러시아에 동반 진출한 협력업체들이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도 현지 사업 철수를 꺼리는 이유다. 배터리팩 공급사인 성우하이텍, 시트 납품사인 대원산업 등이 현대차그룹과 함께 러시아 현지에 동반 진출한 대표적 기업들이다.

현대차그룹 해외공장 판매 공시에 따르면 러시아법인(HHMR) 판매량은 지난 1월 1만7649대, 2월 1만7402대로 준수한 실적을 내다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난 3월 판매량이 3708대로 급감했고 급기야 지난달에는 판매대수 '0대'를 기록했다. 작년 문을 연 부품 계열사인 현대위아의 러시아 엔진 공장도 가동이 전격 중단돼 현지 법인 손실이 누적되고 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지난 4월부터 중단된 현지공장과 판매망은 여전히 멈춰 있는 상태"라며 "주재원들도 그대로 남아 사업 재개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