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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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부터 피고인 동의 없인 피의자 신문조서가 법정에서 증거로 인정되지 않게 되면서 재판 지연현상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최윤희 서울중앙지검 중요범죄조사부 검사(사법연수원 39기)는 29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진행된 ‘검사 작성 피의자 신문조사의 증거능력에 대한 고찰’을 주제로 열린 2024년 제1회 형사법포럼에서 “피고인이 동의하지 않는 피의자 신문조서를 법정에서 증거로 쓸 수 없게 되면서 재판이 장기화하고 조직적인 사기범죄 등의 진상을 규명하는데도 지장이 생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2022년 형사소송법 제312조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검사는 피고인·변호인이 동의했을 때만 피의자 신문조서를 증거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피고인 측이 검찰 조사를 받을 때 범행을 자백했더라도 재판에서 말을 바꾸면 해당 내용을 증거로 쓸 수 없다. 개정안은 법정에서 직접 조사해 확인한 내용을 최우선 증거로 삼는 ‘공판 중심주의’ 원칙을 바탕에 두고 있다. 피의자가 신문 과정에서의 실수나 수사기관의 압박 등으로 잘못된 진술을 하더라도 재판에서 이를 바로잡기 쉽지 않다는 문제를 개선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검찰과 경찰은 “피의자 진술이 결정적인 증거로 작용하는 범죄가 많기 때문에 혐의 입증이 더 어려워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개정안 시행 후 수사를 받고 기소됐던 인물들의 재판이 본격화하면서 피의자 신문조사를 활용할 수 없는 부작용이 법정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최 검사는 “이제는 피고인이 법정에서 조서에 적힌 내용을 부인만 하면 본인뿐 아니라 공범에 대한 내용이 적힌 조사내용까지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며 “이 때문에 수사단계에서 진행했던 신문이 재판에서 그대로 반복되고, 구속된 피고인은 구속기한 만료로 석방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300억원대 피해가 발생한 전세사기 사건의 주범들과 250억원대 횡령을 저지르고 9년간 도피하다 붙잡혀 송환됐던 피고인 등이 공범들의 증인신문이 진행되던 중 구속기한 만료로 풀려난 일을 대표적 사례로 들었다.

최 검사는 “피고인이 수사를 받을 때 한 진술은 법정 진술보다 증거가치가 우월하고 대체불가능하다”며 “피의자의 구금, 변호인 참여, 진술 임의성, 영상녹화 여부 등과 관계없이 피의자의 의사만으로 진술 내용을 증거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미국과 독일 등 외국 사례에 비춰보더라도 비합리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수사과정에서 나온 진술은 당시 임의성과 진정성이 보장되는 것을 전제로 법정에서도 증거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