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석유기업들이 대금 연체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중국 위안화를 사용하면 미국 등 서방이 주도하는 달러화 결제망을 이용하지 않고도 석유거래를 활성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위안화 사용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러시아는 편법으로 달러화를 이용해 제재를 우회하려고 했으나 이마저 강화된 재제에 막혀 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와의 석유 거래에 위안화를 사용하려고 했던 중국도 모든 물량을 러시아에서 직도입할 수 없어 중개상을 통할 때 달러화 거래를 하고 있다. 인도와 사우디아라비아 남미 일부 국가 등이 위안화 거래에 동참할 움직임을 보였으나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규모를 확대하지 못했다. 인도에선 중국 위안화가 기축통화로 자리 잡는 데 도움을 주고 싶지 않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중국 러시아도 달러화 거래망 못 버려

28일 로이터통신 등이 현지 소식통을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석유기업들은 중국과 인도 터키 등의 석유 구매처에서 대금을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당초 이들은 위안화 결제를 통해 원유를 거래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원유 거래 중개, 송금, 결제 등 인프라가 크게 부족한 탓에 편법으로 달러화 거래망을 활용해야 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이 중국과 아랍에미리트(UAE) 등의 은행을 겨냥해 2차 제재를 위한 단속을 강화한 탓에 러시아로의 송금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Us dollar and Chinese yuan / 게티이미지
Us dollar and Chinese yuan / 게티이미지
소식통에 따르면 주요 은행들은 석유 수출, 수입사 등 고객에게 미국의 제재 대상 리스트에 있는 개인이나 기업·조직이 거래에 관여하지 않았고, 지불 대상도 아니라는 사실을 서면으로 보증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UAE의 은행인 퍼스트아부다비은행(FAD)과 두바이이슬람은행(DIB)은 이미 러시아 상품 거래와 관련된 다수의 계좌를 정지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튀르키예 지랏은행과 중국공상은행(ICBC)은 결제를 해주긴 하지만 처리에 몇 달리 걸리기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로이터 통신에 "중국 은행들이 지불 문제가 있다"며 "미국과 EU가 중국에 대해 전례 없는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규제 위반 눈감아줬던 미국의 돌변

러시아가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미국과 EU는 러시아를 달러화 결제망에서 퇴출시키고, 가격 상한을 두는 방식으로 러시아산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을 규제했다. 그러나 석유 거래 중개상들이 중동과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등으로 경로를 변경하면서 규제를 우회했다. 중국과 인도는 아예 달러 결제망 밖에서 위안화로 석유를 거래하기도 했다.

미국은 그러나 지난해 12월 23일 새로운 행정명령을 내려 거래에 직접 관여한 주체뿐만 아니라 이를 중개한 은행까지 적극 재제하겠다고 나섰다. 그동안 유가 급등으로 물가가 올라 조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상황을 두려워했던 미국의 태도가 바뀐 것이다.

인도 역시 작년 10월부터 자국의 국영 정유사가 러시아 로스네프트에 위안화를 주고 석유를 사 온 데 대해 비공식적으로 수 차례 문제를 제기했다. 인도 정부가 어떤 이유에서 문제를 제기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로이터 통신은 "2020년 국경 충돌로 인도군 20명과 중국군 4명이 사망하는 등 관계가 긴장된 상황에서 인도가 위안화를 사용하는 것이 중국에 이익이 된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고 분석했다.

인도 정유사들은 결국 달러화와 UAE의 통화 디르함 등으로 대금을 결제했다. 익명의 인도 정부 관계자는 로이터 통신에 "(위안화 결제를)금지한 것은 아니며 민간 기업이 거래를 결제하기 위해 위안화를 갖고 있다면 정부는 이를 막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그런 거래를 장려하거나 촉진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 기업들은 자국 루피화로 대금을 지급하는 방안도 타진했으나 러시아 측에선 수입할 물건이 많은 중국 위안화를 받는 게 유리하기 때문에 이를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 나홋카 베이 코즈미노 터미널 근처에 정박한 러시아 원유 유조선  / 사진=Reuters
러시아 나홋카 베이 코즈미노 터미널 근처에 정박한 러시아 원유 유조선 / 사진=Reuters

위안화 거래, 왜 어렵나

중국 이외 국가가 위안화 거래를 선호하지 않는 것은 신뢰성 때문이다. 미국과 거리를 두려는 국가의 기업들 역시 언제든 자본통제조치를 할 수 있는 중국 인민은행을 신뢰하기 어려운 것으로 여긴다. 중국 정부 당국이 자국 경기 부양을 위한 정책을 사용하고 있어 위안화를 보유할 경우 가치가 급락할 수 있다는 환율 리스크도 있다.

위안화로 석유 거래를 하려면 현실적·실질적인 어려움도 따른다. 원유의 경우 정유사에서 직거래하는 물량도 있지만 대부분은 원유 중개 기업들이 취급하는 물량을 사와야 하며, 이들은 달러화 거래를 선호한다.

위안화는 유동성도 낮고 지급·결제 인프라도 달러화에 비해 열세다. 정유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인도 정유사가 위안화 거래를 하려고 해도 루피를 먼저 홍콩 달러로 환전한 뒤 위안화로 환전해야 하기 때문에 위안화로 결제하면 비용이 증가한다. UAE의 디르함으로 결제하는 것보다도 2~3%가량 비용이 더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