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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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중(反中)'의 기치를 내걸고 대만 총통에 당선된 라이칭더의 총통 부임이 다가오면서 대만 해협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대만 독립 노선에 대해 '죽음의 길'이라던 중국이 대만을 상대로 ‘행동'에 나설 수 있어서다. 대만 통일을 여러 차례 강조해 온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라이 총통의 취임을 그냥 지나치는 것은 체면이 상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중국의 상황이 녹록지 않다. 우선 경기침체가 지속되는 등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게 급선무다. 첨단기술 수출 통제에 이어서 중국의 과잉생산 이슈를 문제 삼는 등 미국의 대중 압박도 심화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군의 핵심 전력인 로켓군 수뇌부가 모조리 숙청당한 것도 대만을 상대로 한 중국의 무력 도발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이다. 다음 달 20일로 다가 온 라이 총통 부임을 앞두고 시 주석의 선택에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당신이 모른다는 것을 나는 안다"...바이든 도발

현재 중국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선 지난해 미·중 사이에 오간 설전을 복기해 볼 필요가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중국 정찰 풍선이 미국 상공을 지나다 격추된 사건에 대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그 사실(정찰 풍선의 존재)을 몰랐을 것"이라고 시 주석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반복적으로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나는 중국 지도부가 풍선이 어디에 있었는지, 풍선 안에 뭐가 있었는지, 어떤 일이 진행됐는지를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생각에 그것은 의도적인 것보다는 당황스러운 일"이라고 언급했다. 시 주석이 정찰 풍선의 존재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거듭해서 강조한 것이다.

당시 이를 두고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바이든 대통령의 시 주석에게 화해의 제스처를 보낸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실제로는 시 주석을 극도로 자극하는 발언이었다는 외교 전문가들의 평가다. 중국군이 반경 36m짜리 거대한 정찰 풍선 5기를 미국 상공에 띄웠는데, 이 같은 중요한 정보 활동을 시 주석이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한 중국 전문가는 "시 주석이 철권 지도체제를 완성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시 주석이 군부를 장악하지 못했다는 것을 바이든이 지적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체면이냐 실리냐…대만 총통 취임에 딜레마 빠진 시진핑
이 일은 중국 지도부에 작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정찰 풍선 사건 이후 중국 외교·안보 라인의 핵심축이라고 할 수 있는 친강 외교부 장관과 리상푸 국방부 장관이 차례로 숙청됐다. 이 무렵 중국 로켓군 부대의 자세한 현황이 담긴 비밀 문건이 미국서 공개됐는데, 이 문제에 일정 정도의 책임이 친강과 리상푸에게 있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이 일로 시 주석이 전폭적 신뢰를 보냈던 중국군 전력의 핵심인 로켓군의 수뇌부도 모조리 옷을 벗었다.

중국군 재편은 현재진행형

지난 19일 시 주석은 정보지원부대를 신설하고 기존의 전략지원부대를 개편하는 등 8년 만에 최대 규모의 군 개혁을 단행했다. 정보전 부대를 중앙군사위 직속으로 재편하고, 전략지원부대를 3개로 분리해 시 주석이 군 통제권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이번 군 개편이 지난해 리상푸 전 국방부장과 로켓군 수뇌부 숙청의 연장선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리상푸는 3개로 분리된 전략지원부대의 초대 부사령관을 역임했다. 시 주석이 자신의 군 통제력에 구멍이 생겼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전면적인 군 개혁 작업을 진행 중이라는 의미다. 다음날 군 기관지 해방군보가 대만 통일 문제를 언급한 점도 눈에 띈다. 해방군보는 이번 정보지원부대 신설로 “건군 100주년 분투 목표를 기한 내에 실현하는 데 유리해졌다”고 강조했다. 건군 100주년 분투 목표란 중국에서 ‘2027년까지의 대만과의 통일’을 의미한다.

실제로 시 주석은 3기 집권 이후 대만 통일에 대한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시 주석은 2022년 10월 열린 제20차 전국대표대회에서 대만 통일을 강조하면서 "무력 사용 포기를 절대 약속하지 않을 것"이라며 필요시 무력 사용을 배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작년 12월 시 주석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강조하면서 대만과의 통일이 '필연적'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중국이 2027년까지 대만을 무력 통일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하는 분석도 나온다. 윌리엄 번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도 “시진핑은 이미 정치 생애 안에 대만을 통제하겠다고 결심했다”는 메시지를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하고 있다.

딜레마에 빠진 시 주석

체면이냐 실리냐…대만 총통 취임에 딜레마 빠진 시진핑
오는 20일 총통으로 부임하는 라이칭더는 “대만의 주권은 중국에 속하지 않는다”라거나, “대만은 이미 독립 상태에 있다”고 발언하면서 대만 정계에서 대만 독립의 아이콘으로 통해왔다. 이번 총통 선거에서도 통일을 앞세운 대중 압박이 거세지는 가운데 반중·친미·독립 노선을 앞세워 유권자의 표심을 자극, 총통 선거에서 승리했다. 민진당의 집권은 전쟁 세력을 지지하는 것이라며 날 선 모습을 보였던 중국이 라이 총통 취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유다.

우선 중국은 친중 노선의 대만 국민당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샤리옌 국민당 부주석을 지난 1월 13일 총통 선거 전후에 중국으로 초청했다. 지난 10일엔 대표적 친중 인사인 마잉주 전 총통이 중국을 찾아 시 주석과 만났다. 지난 26일부터 나흘간 일정으로 방중한 국민당 의원단을 만난 자리에서 중국 고위 당국자들은 92합의와 대만독립 불가를 전제로 관광 재개와 대만산 농수산물 수입 재개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이와 동시에 중국은 대만해협에서 군사·안보 위협을 지속하고 있다. 지난 22일 대만해협 중간선에 가까운 군사 요충지로 대만이 관할하는 펑후섬 근처에 중국 해군 주력 미사일 구축함이 출현해 대만 군함과 한때 대치했다. 또 지난 27일 중국 전투기와 드론 등 22대의 군용기가 대만 인근 상공에서 포착되는 등 대만을 상대로 한 중국의 군사적 압박도 서서히 강화되고 있다. 이 중 12대는 대만해협 중간선을 넘어 방공식별구역에 침투했다. 일부 군용기는 대만 총통부 상공까지 3~4분이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까지 접근하기도 했다. 중국이 대만 총통 취임까지 이 같은 군사적 도발을 강화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하지만 중국이 대만을 상대로 직접 행동에 나서기에는 중국이 현재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평가도 많다. 무엇보다 중국의 경기침체가 장기화하고 있고, 미국의 대중 압박도 강도를 더하고 있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잇따라 중국을 방문해 △과잉생산 △중국의 러시아 지원 △양안 갈등 등을 거론하면서 중국을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옐런 장관은 “필요하다면 러시아를 지원하는 중국 은행들을 제재할 것”이라는 취지로 발언하면서, 미국이 대(對)중국 금융제재에 나설 수 있다는 경고를 하기도 했다.
체면이냐 실리냐…대만 총통 취임에 딜레마 빠진 시진핑
시 주석 입장에선 체면이냐 실리냐 양자택일을 해야 할 딜레마 상황이라는 평가다. 대만을 상대로 국지 도발을 감행할 수 있지만, 미국과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 높인다는 점은 중국에 큰 부담이다. 로켓군과 리상푸 숙청 이후 중국군이 전쟁 수행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재정비가 이뤄졌는지 여부도 변수다. 최근 이뤄진 군 개혁은 시 주석의 군부 장악이 현재진행형이라고 봐야 한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그렇다고 라이칭더 대만 총통의 취임을 그냥 지켜보는 것은 그동안 대만을 상대로 한 중국의 '말 대포'가 무색해지는 일이다. 중국 내 강경파의 여론 악화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한 군사 전문가는 "딜레마에 빠진 시 주석은 대만을 압박하는 모습도 보여주면서 미·중의 본격적 충돌 양상도 막을 수 있는 묘안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이지훈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