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중앙연구원, 고문헌 조사 중 발견…20대 후반 초기작 추정
유교 경전 핵심 다루며 그림·색인까지…향후 연구 '이정표' 기대
동·서양 아우른 독창적 사상가의 흔적…최한기 '통경' 찾았다
동양의 인문 사상과 서구 문명을 통합한 새로운 사유를 이끈 혜강(惠岡) 최한기(1803∼1877)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저서가 처음으로 발견됐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은 "부여 함양박씨 종가가 기탁한 고문헌 자료를 연구하던 중 최한기의 미발견 저서 '통경'(通經)을 처음으로 확인했다"고 25일 밝혔다.

혜강 최한기는 조선 후기에 이름을 널리 알린 학자다.

그는 유교 문명과 서구 문명의 통합을 구상하며 '농정회요', '심기도설', '우주책', '지구전요' 등 1천권 이상의 방대한 저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상당 부분이 유실돼 일부만 남아있다.

'통경'의 경우, 최한기가 책을 저술했다는 내용과 서문 일부만 전해져 왔다.

동·서양 아우른 독창적 사상가의 흔적…최한기 '통경' 찾았다
이번에 발견한 '통경'은 모두 20책 53권으로 이뤄져 있다.

시경, 서경, 논어, 맹자 등 유교에서 중요한 경전 13개를 아우르는 '십삼경'(十三經) 내용을 주제별로 분류해 해설한 책으로 유교 문명의 정수를 집약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책은 '학부'(學部)·'사물부'(事物部)·'의절부'(儀節部) 등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했으며, 시각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250개의 그림과 색인 기능의 목록도 더했다.

이창일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통경'은 최한기의 초기작으로, 28세 무렵에 저술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유교의 모든 분야를 이해할 수 있는 정밀한 구조로 구성돼 있다"고 평가했다.

동·서양 아우른 독창적 사상가의 흔적…최한기 '통경' 찾았다
이 연구원은 "당시 '십삼경'을 새롭게 해석해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려 한 성과"라며 "유교 문명의 지식을 정리하는 차원을 넘어 새롭고 독창적인 방식의 저술"이라고 가치를 강조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수개월간 자료를 분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한기의 책으로 알려진 여러 자료에는 그의 이름이 기록돼 있으나, 이 책에는 그런 흔적이 없었다고 한다.

책은 전문 필경사(筆耕士·글씨 쓰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가 쓴 것으로 추정된다.

장원석 책임연구원은 "책 표지와 내지에 최한기의 저서라는 글이 하나도 없었다.

분석 결과, 기존에 알려진 서문 일부 내용과 같고 최한기의 주요 사상과도 일맥상통했다"고 설명했다.

동·서양 아우른 독창적 사상가의 흔적…최한기 '통경' 찾았다
장 연구원은 "최한기가 유가 경전을 연구해 '통경'을 펴낸 것은 그의 철학이 개화파의 선구라는 학계의 통념보다 훨씬 더 전통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는 증거"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이번 성과를 알리는 보고 발표회를 26일 온라인으로 연다.

이창일·장원석 책임연구원이 '통경'과 발견 의의를 설명한 뒤, 한양대 김용헌 교수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의 도널드 베이커 교수 등이 참여해 자료를 논할 예정이다.

한국사상 전문가인 도널드 베이커 교수는 "'통경'은 최한기의 철학이 어떻게 진화해 나갔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를 제공하는 자료"라고 평가했다고 연구원은 전했다.

연구원은 추후 '통경'을 연구한 뒤 주요 내용을 학술 행사에서 공개할 계획이다.

동·서양 아우른 독창적 사상가의 흔적…최한기 '통경' 찾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