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조1998억원 vs 8897억원.’

지난 22일 종가 기준 고려아연과 영풍의 시가총액이다. 영풍그룹 ‘투톱’인 두 회사의 몸값 차이가 10배 이상 벌어진 건 1990년 7월 고려아연 상장 후 처음 있는 일이다.

산업계에선 장씨·최씨 일가의 75년 동행에 균열이 생긴 이유로 급격히 커진 두 기업 간 격차를 꼽는다. 장씨 일가가 경영하는 영풍 및 3개 상장 회사(코리아써키트 인터플렉스 시그네틱스)와 최씨 측의 고려아연이 절묘한 균형을 맞춰가며 성장했는데, 수년 새 그 차이가 너무 벌어졌다는 것이다. 고려아연의 배당이 절실한 영풍 측과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실탄을 아껴야 하는 고려아연 측 두 가문의 이견이 여기서 시작됐다는 분석이다.

영풍그룹은 해방 직후인 1949년 황해도 출신의 동향인 장병희 창업주와 최기호 창업주가 동업해 설립한 무역회사다. 두 창업주는 1951년 피란지인 부산에서 철광석 등을 일본으로 수출하는 충주철산개발공사를 세웠다. 이후 아연 직접 생산을 위해 1970년 10월 경북 봉화군에 국내 최초의 대단위 아연제련공장인 석포제련소를 준공했다.

석포제련소를 운영하는 영풍은 장씨 일가가, 1974년 영풍의 계열사로 설립돼 온산제련소를 운영하는 고려아연은 최씨 일가가 맡아 경영했다.

이후 영풍은 전자 부품으로, 고려아연은 비철금속과 2차전지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다. 영풍은 2005년 인수한 인쇄회로기판(PCB) 제조사 코리아써키트와 인터플렉스가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보급이 늘면서 급성장했다. 2014년 기준 PCB 생산 세계 2위에까지 올랐다. 철강 업계에 포스코가 있다면 비철금속 업계에는 고려아연과 영풍이, 스마트폰 업계에 삼성전자가 있다면 전자부품 업계에는 영풍이 있다는 말도 나왔다. 두 집안의 갈등이 싹튼 건 2022년부터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취임 직후 제3자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한화, LG, 현대자동차 등의 투자를 받아 우호 지분을 확보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