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에 상처주는 발언 절대 금지"라는 착한 마음의 부작용 [서평]
올해 초 가수 아이유가 발표한 신곡 '러브 윈즈(Love Wins)'를 두고 한때 논란이 일었다. '러브 윈즈'는 2015년 미국 연방대법원이 동성 결혼에 합헌 결정을 내렸을 때 성소수자들이 내건 슬로건이다.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문구를 이성 간의 사랑 노래에 이용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아이유가 자필로 쓴 편지로 노래의 취지를 설명했지만 비판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결국 사흘만에 노래 제목이 '러브 윈즈 올(Love wins all)'로 수정됐다.

논란은 노래 제목에 그치지 않았다. 뮤직비디오에 장애를 비하하는 내용이 담겼단 지적도 나왔다. 뮤비엔 아이유와 BTS의 뷔가 각각 청각·시각 장애를 가진 연인으로 출연한다. 폐허가 된 현실과 달리 캠코더 화면을 통해 나타나는 행복한 세상에선 두 사람은 장애가 사라진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우리가 만들고 싶은 '캠코더 세상'은 장애인이 비장애인으로 '극복'되는 세상이 아니라 장애인도 함께 이동하고, 일하고, 지역에서 함께 사는 세상"이란 입장문을 냈다.

아이유를 향한 이같은 비난과 논란은 오늘날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이 들이대는 잣대의 정당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사는 톱스타가 고의로 성소수자·장애 혐오를 작업물에 담으려 하진 않았으리란 건 동의를 구하기 어렵잖다. 그러나 PC의 관점에서 아이유의 노래는 의도와 관계 없이 '사죄해야 마땅한 것'이다.
"약자에 상처주는 발언 절대 금지"라는 착한 마음의 부작용 [서평]
독일 대표 시사주간지이자 진보 성향 언론으로 알려진 슈피겔의 기자 르네 피스터가 쓴 <잘못된 단어>는 PC 운동(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섞인 표현을 쓰지 말자는 사회적 운동)이 도를 지나치며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단계까지 왔다고 주장한다. 피스터는 워싱턴 특파원으로 있는 동안 미국에서 목격한 사례들이 독일과 다른 나라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봤다.

물론 저자가 PC 운동의 순기능을 인정하지 않는 건 아니다. 현재의 미흡한 점을 이상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투쟁해온 이들 덕분에 현실이 된 꿈이 많다. 1920년의 여성참정권 확보, 인종 분리를 금지한 1960년대 민권법, 미군의 베트남전 철수를 이끈 1970년대 시민운동, 동성혼 법제화를 이끈 최근의 투쟁 등이 그것이다.

PC 운동이 피스터의 표현대로 '새로운 독단주의'로 흐르게 된 건 '혐오 발언' 혹은 '상처를 주는 말', 즉 '잘못된 단어'의 범위가 점점 넓어지면서부터다. 요즘 미국 대학에선 수업 시간에 흑인을 차별하는 단어인 '니그로'를 직접 언급하는 걸 피하기 위해 'n……'으로 줄인 축약어를 사용하기만 해도 교수가 징계를 받는다. 법학 수업 시간에 언어적 모욕을 당한 사례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했는데도 그렇다.

피스터는 잘못된 단어의 범위가 넓어지는 속도가 일반적인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 빠르다고 지적한다. 평범한 시민들조차 말할 수 있는 범위가 점점 좁아지는 듯한 불안감을 느낀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2022년 3월 뉴욕타임스가 '미국이 직면한 표현의 자유 문제'란 제목의 칼럼에서 인용한 한 설문조사 결과를 소개한다. 조사에 따르면 욕을 먹거나 외면당할 것이 두려워 표현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여기는 미국인이 8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약자에 상처주는 발언 절대 금지"라는 착한 마음의 부작용 [서평]
잘못된 단어에 대한 검열은 사회 구성원 간의 의사소통을 차단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다. 별 뜻 없이 한 말에서 차별과 편견의 메시지를 발견해 공격한다면 결국 침묵이 가장 안전한 선택지가 되고 만다. 서로 간의 오해와 분노가 쌓이다 보면 혐오와 양극단으로 치닫는 것도 순식간이다. "침묵하는 대중의 분노를 파고들어 등장한 게 바로 트럼프와 같은 포퓰리스트"라고 저자는 경고를 보낸다.

PC의 공격을 받은 '러브 윈즈 올'에 대해 아이유가 쓴 곡 설명은 이렇다. "누군가는 지금을 대혐오의 시대라 한다. 분명 사랑이 만연한 때는 아닌 듯하다.(중략) 사랑하기를 방해하는 세상에서 끝까지 사랑하려 애쓰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검열의 펜을 들었을 땐 미처 보지 못했던 문맥과 흐름으로 노래를 들으면 혐오 대신 관용과 포용이 귀에 울린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