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불법 이민 단속법을 제정한 미국 텍사스주와 이를 막아선 연방정부 간 소송전 도중 집행정지된 법이 일시적으로 수시간 동안 시행되는 이례적인 사태가 벌어졌다. 보수 성향 대법관이 다수를 점한 연방대법원과 하급심 법원 간 이견과 절차상 문제 때문이다.

19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미 연방대법원은 텍사스주 이민법 위헌 소송과 결부된 법 집행정지를 해제한 뒤 하급심에 돌려보냈다. 이에 하급심인 제5 연방항소법원은 즉각 심리를 열어 몇 시간 만에 집행정지를 복원했다. 작년 12월 통과된 이 법이 시행되면 텍사스주 정부는 불법 입국자를 체포·구금하고 출국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이 법은 당초 지난 5일부터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1심 법원이 효력정지 가처분을 한 상태였다. 지금은 불법 입국자도 난민이라고 주장하거나 정치적 망명을 신청하면 심사 기간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고, 불법 체류할 수도 있다. 텍사스의 새 이민법은 불법 입국을 무조건 범죄로 규정해 즉각 체포·추방하고, 재입국 시 최대 20년형에 처하도록 했다.

이날 연방대법원이 절차상 이유로 법 집행정지를 해제하자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법 집행기관에 부담을 주고 남부 국경에 혼돈과 혼란을 야기할 것”이라며 반발했다. 제5 연방항소법원이 이날 밤늦게 재차 집행정지 명령을 내리기 전까지 체포된 불법 이민자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효력정지는 본안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이겨 연방정부 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텍사스주의 패소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연방대법원은 2012년 애리조나주의 불법 이민자 체포법을 위헌으로 판결했다.

텍사스주가 이민 단속법을 제정한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의 불법 입국자가 몰려들고 있어서다. 지난해 미국 국경에서 적발된 불법 입국자 수는 320만 명으로 사상 최대였다. 이 가운데 240만 명이 텍사스, 캘리포니아 등 남부 국경에서 적발됐고, 파악되지 않은 입국자도 상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엘파소 등 텍사스주의 일부 도시는 2022년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텍사스주는 이민자들을 버스에 태워 시카고시와 뉴욕시 등 민주당 집권 자치단체로 이송하기도 했다. 그러자 시카고시도 작년 5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연방·주 정부에 긴급 재정 지원과 방위군 파견을 요청했다.

미국 내에선 불법 입국자 단속을 강화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갤럽의 지난 1월 여론조사에서 가장 많은 응답자가 미국의 최우선 과제로 이민 문제를 꼽았다. 바이든 정부의 낮은 지지율도 불법 이민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바이든 정부는 미국의 건국 이념과 인권 등을 이유로 불법 이민을 일부 묵인해왔다. 이민자의 노동력이 미국 경제 성장에 기여하는 면도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이달 초 ‘이민자들의 노동력이 공급돼 과도한 임금 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위험을 낮출 수 있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그러나 최근엔 이민 폭증으로 인한 부작용이 더 심각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현일/한경제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