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거센 반발…의대교수 25일 집단사직 예고, 의협 집단휴진 우려도
정부, 면허정지 압박하며 의료계 '달래기'도 병행…의료계 내 '협상론' 고개들까 주목
'전공의 면허정지' 현실화하면 반발 커질 수도…전공의·의대생·교수들, 오늘 회의
의대증원 '대못' 박은 정부…의사들 투쟁할까, 협상 전환할까
정부가 20일 2025학년도 대학입시의 의과대학별 정원을 확정하면서 '2천명 증원' 방침을 확정했다.

전공의들의 집단사직 등 의료계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당초 발표했던 규모의 증원을 밀어붙인 것이다.

의료계는 더 거센 반발을 할지, 증원을 인정하고 향후 의료개혁 과정에서 의료계의 목소리가 반영되도록 대화에 나설지 갈림길에 서게 됐다.

이미 한 달을 넘긴 의료공백 사태가 한층 더 깊어질지, 봉합되는 수순을 밟을지는 정부가 대화의 문을 닫고 있는 전공의들을 향해 어떤 '화해의 제스처'를 취할지가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의료계의 통일된 대화 창구가 없다'는 말만 반복하며 별다른 대화 노력 없이 전공의들에 대한 무더기 면허정지를 내린다면, 의료계의 극심한 반발로 의료 현장의 혼란과 환자들의 고통만 키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의대증원 '대못' 박은 정부…의사들 투쟁할까, 협상 전환할까
◇ 여론 '압도적 지지' 등에 업고 스스로 '퇴로' 끊은 정부
정부가 이날 대학별 의대 입학 정원을 발표한 것은 그간 추진해 온 2천명 증원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증원 규모 백지화 후 협상'이라는 의사들의 주장에도 흔들림 없이 의료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반복해서 의지를 밝히다가, 결국 '퇴로'를 차단하며 물러설 여지를 스스로 없앴다.

지난달 6일 보건복지부가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를 열고 '2천명 증원' 계획을 발표한 후 정부는 증원 여부나 증원 규모에 대해 의료계와의 협상 여지를 두지 않았다.

전공의들이 지난달 19일부터 집단사직 후 의료현장을 이탈하기 시작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다음날 TV로 생중계된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의료 현장의 주역인 전공의와 미래 의료의 주역인 의대생들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볼모로 집단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2천 명 증원이 과도하다며 허황한 음모론까지 제기하고 있다"면서 "이 숫자도 턱없이 부족하다.

2천 명 증원은 말 그대로 최소한의 확충 규모"라고 강조했다.

지난 11일 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총회를 연 뒤 "정부가 적극적으로 (사태 해결을 위한) 합리적인 방안 도출에 나서지 않을 경우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겠다"고 밝혔을 때도 조규홍 복지부 장관이 바로 다음날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이처럼 전공의 이탈이 장기화하고 의대 교수들의 집단사직 움직임까지 일고 있는데도 2천명 증원을 뚝심 있게 밀어붙인 것은 여론의 압도적인 지지가 결정적인 동력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의대 증원에 대한 찬성 여론은 갈수록 커지고 있으며 의정 갈등 상황에서 의사들의 설화가 잇따르면서 집단행동에 대한 대중의 반감은 확대되고 있다.

의대 증원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이 작년 11월 4~6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82.7%였던 것이 MBC가 지난 11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는 89%까지 상승했다.

의대증원 '대못' 박은 정부…의사들 투쟁할까, 협상 전환할까
◇ 의대교수 집단사직 임박·꿈쩍 않는 전공의들…의료계 '협상론' 고개 들까
정부의 의대 정원배분 발표에 의료계의 반발은 한층 더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의료현장을 떠난 전공의들은 이미 한 달 넘게 정부와의 대화도 거부한 채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의료현장을 떠난 전공의 수는 전체의 93%에 달하는 것으로 정부는 파악하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의 박단 비대위원장은 전날 "18일 기준 98개 병원 전공의 중 3.1%만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의대 교수들은 집단사직 계획을 밝혔다.

전국 의대교수 비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5일까지 집단사직을 결정한 의대는 전체 40곳 중 16곳이었는데, 이후 집단사직 의사를 밝힌 의대들이 늘어나고 있다.

의대 교수들 대부분은 사직서 제출 시한을 오는 25일로 잡고 있어 이날을 계기로 교수들의 집단행동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교수들은 사직이 수리될 때까지는 의료 현장에 남겠다고 말하고 있어 당장 교수들이 무더기로 병원을 떠나는 일은 없겠지만, 사태가 길어지면 의료 현장에 더 심각한 타격이 올 수 있다.

집단휴학을 하는 의대생들의 움직임도 커지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날 하루 전국 40개 의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유효 휴학 신청'(학부모 동의, 학과장 서명 등 학칙에 따른 절차를 지켜 휴학계를 제출) 건수는 11개교, 512건으로 집계됐다.

최근 8일간만 2천926명이 유효 휴학계를 제출했다.

개원의들이 중심인 대한의사협회(의협) 역시 조만간 집단 휴원이나 주말·휴일 단축 진료 같은 집단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이날 시작한 차기 회장 선거가 마무리된 뒤 논의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의대 학생에서 전공의, 교수들, 개원의 등으로 의사들의 반발이 전방위적로 확대하고 있지만, 정부가 이날 의대 증원 규모를 확정한 만큼 의료계 내에서도 그동안 소리를 내지 못하던 '협상론'이 고개를 들 가능성도 있다.

이미 2천명 증원이 확정된 상황에서 '투쟁'을 통해 정부 정책을 되돌리는 게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정부가 연일 필수의료 강화를 위해 수가 인상 등의 지원책을 제시하고 있고, 전공의 근무여건 개선을 내세우고 있는 만큼 의료계 차원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얻어내자"는 목소리가 나올 여지가 있다.

의대증원 '대못' 박은 정부…의사들 투쟁할까, 협상 전환할까
◇ '대화 문 닫은' 전공의 움직임 주목…행정처분이 분수령 될 듯
의대 증원을 확정한 정부는 전공의들의 의료현장 복귀를 압박하기 위해 면허정지 처분이라는 '채찍'과 근무여건 개선이라는 '당근'을 함께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난 19일자로 의료현장을 이탈한 전공의 등 1천308명에 대해 즉시 소속 수련병원에 복귀하라는 업무개시명령을 공시 송달했다.

'3개월 면허정지'를 내용으로 하는 행정처분 사전통지 절차를 마무리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론 대형병원의 과도한 전공의 의존 탈피와 전공의들의 장시간 근무를 단축하는 방안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지난 8일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들에게 매달 100만원씩 수련비용을 지원하고, 분만·응급 등 다른 필수의료 과목 전공의들로 지원 대상을 넓히기로 한 데 이어, 36시간인 전공의 연속근무 시간과 80시간인 주 최대 근무시간 단축을 추진한다.

전공의들 사이에서는 정부의 증원 규모 확정에 크게 동요하는 움직임은 당장 나오지 않고 있다.

박단 대전협 비대위원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여기저기 흩날리는 말은 많지만 전공의와 학생은 정적이다"고 썼다.

이미 면허정지나 군 입대를 각오한 경우가 많은 만큼, 정부가 증원 규모를 확정한 것 자체만으로 무더기로 병원에 발길을 돌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 의료계 인사는 "의사면허라는 '국가면허'가 갖는 힘에 대한 신뢰가 여전히 큰 상황"이라며 "정부가 획기적인 당근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전공의들이 뜻을 쉽게 굽히지 않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전공의들이 무더기로 면허정지 처분을 받으면서 전공의 공백 사태가 장기화하면 병원에 남아 과도한 진료 업무에 시달려온 의대 교수들이나 경영난에 허덕이는 병원, 전문의 배출 지연으로 의료개혁 추진에 차질을 빚게 되는 정부 모두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의료계가 더 강한 반발을 할지, 대화로 돌아올지는 전공의들에 대한 면허정지와 고발 등 행정·사법 절차가 실제로 이행되는지 여부가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의대 교수들은 그동안 여러 차례 집단행동 움직임을 보이면서 "전공의들이 (면허정지 등으로) 다치는 상황은 막겠다"고 강조해왔다.

면허정지 등으로 전공의 수련이 1~2년 늦춰지거나, 전공의들이 아예 병원에서 이탈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당장의 의료대란에 이어 장기적으로 의료체계가 흔들리는 상황이 올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대전협은 이날 저녁 의협, 전국 의과대학 교수협의회(전의교협)와 함께 온라인 회의를 열고 정부의 의대 정원 배정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