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스튜디오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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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정일우가 5년 만에 연극 무대에 오른 소감을 전하면서 '거미여인의 키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정일우는 20일 서울 대학로 한 카페에서 진행된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인터뷰에서 "어려운 작품이라 주변에서 안 했으면 했다"면서 "도전하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작품이라는 얘기에 시작하게 됐고, 정말 힘들었지만 무대마다 새로운 감정을 느끼며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거미여인의 키스'는 이념과 사상이 전혀 다른 두 인물 '몰리나'와 '발렌틴'이 감옥에서 만나 서로를 받아들여 가는 과정에서 피어나는 따뜻한 인간애와 사랑을 다룬다. 정일우는 자신을 여자라고 믿는 몰리나 역에 전박찬, 이율과 함께 캐스팅됐다.

2019년 연극 '엘리펀트 송'에서 마이클 역을 맡아 섬세한 감정연기로 호평 세례를 받았던 정일우는 몰리나 역을 맡아 더욱 농익은 연기를 선보였다는 평을 받았다. 올해 1월 첫 공연을 시작한 후 이미 20회가 넘게 무대에 오른 정일우는 "몰리나가 가진 사랑은 뭔지 고민이 돼 공연에 오르기 전 '멘붕'이 왔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도 "몰리나의 사랑은 다른 차원의 사랑 같았고, 결국 저를 희생하면서 발렌틴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게 제가 어머니에게 받는 사랑 같아서 '모성애'를 떠올리며 연기했다"고 몰리나가 되는 과정을 전했다.

이어 "'어느 순간부터 정일우가 아닌 몰리나라는 여인이 보이더라'라는 반응을 들었을 때 감사했다"며 "연극이 끝난 후에도 여운이 깊게 이어져서 이 작품을 마무리된 후에도 후유증이 이어질 거 같다"고 말하며 웃었다.
/사진=레드앤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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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정일우와 일문일답

▲ 오랜만에 연극무대에 올랐다.


감사하게도 비슷한 시기에 연극 제안이 3편이 왔다. 그중 가장 다른 얘기를 하는 게 '거미여인의 키스'였다. 그런데 어려운 작품이라 주변에서 안 했으면 했는데, 저랑 친한 정문성 배우가 이 작품을 이전에 한 적이 있었다. '인생에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작품이니 꼭 도전하는 게 좋을 거 같다'면서 '하고 나면 많은 걸 배울 것'이라고 해서 도전하게 됐다. 과정은 험난했다. 2달 반 정도 굉장히 고민하며 연습했고, 매일 혜화동까지 지하철을 타고 왔다갔다 하면서 아침부터 밤까지 지냈다.

▲ 매번 달라지는 게 연극의 묘미지만, 매회 관객들이 꼭 봐줬으면 하는 포인트가 있다면 무엇이었나.

이 극의 가장 큰 메시지는 사랑이다. 공연마다 완성도를 100% 가까이 올려 보여드리려 한 부분이었다. 이미 25회 정도 공연했지만, 오늘 공연하면 또 처음 보러 오는 분들도 있을 테니 매번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거 같다. 그러면서 성장한 거 같다.

▲ 몰리나를 연기하며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들었을까.

몰리나가 가진 사랑은 뭔지 고민했다. 공연에 오르기 전 '멘붕'이 왔다. 그때 또 정문성 형에게 전화했다. '형이 생각하는 몰리나의 사랑은 뭐냐' 이렇게 물었다. 몰리나의 사랑은 다른 차원의 사랑 같더라. 형도 그게 맞다면서 모성애에 가까운 사랑이지 않겠나라고 답하더라. 저를 희생하면서 발렌틴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게 제가 어머니에게 받는 사랑 같아서 그렇게 해답을 찾았다.
/사진=레드앤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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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격적인 키스신도 쉽지 않았을 듯하다.

키스신은 발렌틴마다 스타일이 좀 다르다. 초반에 너무 터프하게 키스하길래 저도 깜짝 놀랐다. 저도 그 순간에 여자라, 리드하는 대로 사랑을 표현하려고 했다.(웃음)

▲ 여성적인 동작, 목소리 연출에 대한 어려움을 프레스콜에서 고백했다.

이젠 자연스럽게 나오는 거 같다. 캐릭터가 가진 연약함, 유약함을 표현하고자 연기하다 보니 걸음걸이나 손동작, 말투, 이런 부분들이 모두 몰리나스러워진 거 같다.

▲ 이번 연극을 통해 어떤 평가를 받고 싶었는지 궁금하다.

'어느 순간부터 몰리나라는 여인이 보이더라'라는 반응을 들었을 때 감사했다. 그게 제가 도전하고 싶은 목표였다. 배우는 안주하지 않고 발전하려 해야 롱런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이런 제안을 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 '엘리펀트송' 이후 5년 만에 다시 연극 무대에 올랐는데, 이전과 달라진 부분이 있을까.

그때보단 무대가 편해졌지만, 캐릭터를 위해 노력하는 부분은 같다. 이번에는 몰리나에 몰입하기 위해 영화 '대니시걸'을 많이 참고했다. 작품 속에서 결혼 후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몰리나 같았다. 장국영 배우의 '패왕별희'도 어릴 때부터 많이 봤지만, 이번에 더 많이 봤다. 거기서 어떻게 여성스러움을 표현하는지 많이 참고했다. 그리고 저의 섬세함과 예민함을 많이 끄집어내 표현하려 했다. 저의 몰리나는 부드러워 보이지만 약해 보이고, 강해 보이지만 한없이 슬퍼 보이는, 그래서 영화 얘기를 할 때 행복함을 느끼는 친구다. 그 얘기를 유일하게 들어주는 게 발렌틴이라 사랑이 싹트는 거 같더라. 그래서 그 부분에 중점을 뒀다.
/사진=스튜디오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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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캐스트이다 보니 발렌티 역의 각 배우와 호흡도 다를 거 같다.

각자의 호흡이 다르다 보니 맞춰가는 게 처음엔 힘들었다. 차선우 배우와는 15회 했을 때 처음 호흡을 맞췄다. 제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연기를 해서 쉬는 날에도 나와서 계속 연습했다. 각각이 연기하는 발렌티도 조금씩 다르다. 최석진 배우는 '극 T'로 연기한다. 박정복 배우는 굉장히 날카롭다가 후반부부터는 굉장히 부드러워진다. 오빠 같은 느낌이 있더라. 차선우 배우는 제가 안아주고 싶은 동생 같은 모습이 있다. 배우로서는 힘들지만, 관객들도 그런 재미를 보는 재미가 있을 거 같다.

▲ 2인극이라 대사량이 방대하다.

엄청난 부담감이 있다. 그래서 항상 시작 전에 리딩을 한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어떻게 대사를 이끌고 갈지 고민하고, 반복하면 '쪼'가 생겨서 안 생기도록 노력하고 있다. 무대를 잘하고 나면 예전엔 성취감이 있었는데, 이번엔 그런 게 없더라. 굉장히 먹먹해진다. 그게 해소가 잘 안된다. 공연 당일은 마음이 가라앉아 있다. 공연 끝날 때까지 그럴 거 같고, 끝나고 나서도 여운이 갈 거 같아서 좀 걱정이 되긴 하다.

▲ 매체 연기와 연극 무대를 계속 이어오고 있다.

이순재 선생님께서도 제가 MBC '거침없이 하이킥'을 할 때부터 '무대에 서라'고 하셨다. 이전 작품들도 계속 보러 와주셨다. 배우라면 2시간가량을 끌고 갈 수 있는 역량을 키워나가야 하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면서 제가 살아 있다고 느껴진다. 전 고전을 좋아해서 다음엔 고전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고전이 가진 깊이가 있다. 얼마나 고심했는지도 느껴지고, 작가의 메시지를 알아가는 과정도 재밌다.

▲ 같은 연기를 반복한다는 점에서 매너리즘은 없었을까.

20회 정도 공연을 끌고 오면서 매너리즘을 느꼈다. 그걸 깨는 것도 제 몫인 거 같더라. 같은 연기, 가짜 연기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매너리즘에 빠졌다. 그때 무작정 대본 연습을 했다. 다른 방법이 없더라. 그냥 몰리나가 돼 연기하는 거지. 몰리나로 살아가려 했다. 요즘은 뭘 할 때 몸도 사린다. 운동도 덜하고, 목 관리도 하고, 제스처도 좀 달라진 거 같다. 영혼이 나가서 관객석에 있는 느낌도 있다. 워낙 대사를 많이 보고, 연습하니 '벌써 이 대사를 해야 하나' 하고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이럴 때 조심해야 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 작품의 메시지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인정받는 이야기인 거 같은데, 연기하면서 스스로도 돌아봤을 거 같다.

몰리나가 부럽더라. 제가 가식적으로 행동하는 건 아니지만, 자유롭지 않은 부분도 있지 않나. 그리고 전 겁이 많다. 혼자 있을 땐 동굴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사람이다. 그런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몰리나는 그런데 굉장히 솔직하고, 자유롭게 행동한다. 나도 이렇게 살아가고 싶다는 바람도 있다. 그런 부분에서 관객들도 위로를 얻는 거 같다. 저도 몰리나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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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스타의 아이콘이었지만, 이후의 행보는 연기 그 자체에 집중하는 거 같다.

스타는 한순간인 거 같고, 배우가 돼야 평생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저도 20대 초반엔 스타를 갈망했다. 감사하게도 데뷔작이 큰 사랑을 받았고, 그 작품이 있었기에 지금의 정일우가 있긴 하지만 제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활동을 못 했다고 생각한다. 다른 기자님이 2년 후에 20주년이라 해서 깜짝 놀랐는데, 그만큼 활동할 수 있었던 건, 연기가 인생의 전부라 생각했기 때문인 거 같다. 이 일이 특성상 평가받는 게 업이지만, 저뿐 아니라 다른 분들도 그러시겠지만, 제 스타일대로 계속 노력하고 있는 거 같다. 잘 버틴 거 같다.

▲ 몰리나와 발렌틴은 극과 극인데 서로 끌린다. 실제로 지인 중 그렇게 극과 극인데 친한 사람이 있나.

있다. 이민호.(웃음) 민호는 정말 남자 같다. 저는 섬세하고. 같이 여행 가면 제가 요리하고 다 챙기는 편이다. 민호는 터프하지만, 마음이 따뜻한 친구다. 저와 정반대인 거 같다. 민호와 저는 교통사고도 같이 크게 나면서 생사를 같이했고(웃음). 그래서 서로 의지하고 하는 거 같다.

▲ 이제 공연 막바지다 보니 몰리나를 잘 보내주기 위한 계획도 하지 않을까 싶다.

끝나자마자 걸으러 갈 거다. 여행을 가고, 몇 주 잠수를 타고 싶다. 그 이후엔 좋은 작품으로 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저도 30대 후반을 달려가고 있어서, 더 많은 작품을 제 필모에 채워 넣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아직도 '열일'을 하고 싶어 하는 배우다.

▲ 연극 무대에 오르니 팬들과 직접 마주하는 부분도 있지 않나.

티켓 가격이 이렇게 올랐는지 몰랐는데 'N차' 관람을 해주는 분들이 많아서 정말 감사했다. 그분들께 작은 위안을 드리기 위해 공연마다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또 처음 온 관객들도 있으니까 더 열심히 하게 된다. 멀리서 찾아와 주시는 해외 팬들도 있고, 그런 분들을 보면서 '행운이다' 싶기도 하다.

▲ 지하철로 다니면 알아보는 사람이 없나.

대학로 올 때 주차를 하면 하루에 5만원인데, 그게 너무 돈이 아깝더라.(웃음) 그리고 한 시간 이상 걸리는데, 지하철 타면 37분이다. 빠르고 편리하다. 지하철을 탈 때 다들 휴대전화만 보셔서 아무도 저를 신경 안 쓴다. 저는 마스크도 안 끼고 모자도 안 쓰고 탈 때도 있는데, 간혹가다 '쟤가 그 애인가' 하는 분도 있는데, 관심 없는 거 같다. 20대 땐 못 그랬는데, 군 복무하면서 많이 내려놓은 거 같다. 우리나라 대중교통이 정말 잘 돼 있어서 이용하려 한다.

▲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잘 버텼다'고 하는데, 버티기 비법이 있을까.

작품 할 때만 운동하는데 , 평소엔 귀찮아서 안했다. 그런데 롱런하는 배우들을 보면 자기관리를 잘하더라. 그래서 저도 최근 바뀐 게 매일 운동한다. 덕분에 살도 6kg 정도 빠졌다. 좋은 얼굴을 갖고, 유지하는 게 배우로서 미덕 같다. 예전엔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했는데, 요즘은 먹고 싶은 것도 없다.(웃음)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