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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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인공지능(AI) 반도체 스타트업들이 대기업 출신 반도체 인재를 빨아들이고 있다. 스타트업에서 경력을 쌓은 뒤 대기업으로 움직이는 통상적인 이직과 정반대 흐름이다. AI 반도체 시장이 커질 것이라고 판단한 엔지니어들이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 등 금전적 대가를 노리고 스타트업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재 블랙홀’ 된 반도체 스타트업

19일 업계에 따르면 AI 반도체 스타트업 리벨리온이 최근 낸 채용 공고(2월 5일~3월 3일)에 500명 이상이 지원했다. 이 회사의 예상 채용 인원은 30여 명으로, 경쟁률이 약 17 대 1에 달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전자, 네이버, 넷마블 등 국내 기업은 물론 AMD, ASML 등 해외 반도체 직원도 리벨리온에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AI 반도체 스타트업, S급 엔지니어 싹쓸이
리벨리온 외에도 하이퍼엑셀, 알세미, 모빌린트 등의 AI 반도체 스타트업이 인재를 채용 중이다. 이 업체들 역시 높은 경쟁률을 나타내는 것으로 전해졌다. 퓨리오사AI, 사피온코리아, 딥엑스 등도 최근 직원을 크게 늘렸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에서 10년 동안 근무한 반도체 전문가를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영입한 사례도 있다”며 “스타트업이 반도체 엔지니어들 사이에서 기회의 땅으로 떠오르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빅테크 출신이 모여 AI 반도체 스타트업을 차린 사례도 있다. 김장우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삼성전자, 네이버, 인텔, 마이크로소프트(MS) 등에서 일한 직원들과 2022년 망고부스트를 창업했다. 이 회사 미국법인 대표는 인텔의 AI 가속기 개발을 총괄했던 에리코 누르비타디다.

“AI 반도체 업계에만 돈 몰려”

업계에서는 국내 대기업들이 이끄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 경기가 꺾이면서 인재 대이동이 본격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반도체 부문 실적 부진으로 관련 직원의 초과이익성과급(OPI) 지급률을 0%로 책정했다.

업계 관계자는 “보상은 대기업, 비전은 스타트업이란 것은 이제 옛말”이라며 “최근 인재를 뽑고 있는 AI 반도체 스타트업들은 외부에서 영입한 반도체 엔지니어에게 기존 소속 대기업 수준의 연봉에다 스톡옵션을 추가로 지급한다”고 설명했다.

AI 반도체 스타트업들이 인재 시장의 큰손이 된 것은 벤처캐피털(VC) 투자가 이 분야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리벨리온은 지난 1월 1650억원 규모의 추가 투자금을 유치했다. 모빌린트도 비슷한 시기에 200억원을 확보했다. 퓨리오사AI는 지난해 하반기에 800억원의 투자금을 추가 유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망고부스트도 지난해 9월 727억원 규모의 시리즈A(사업화 단계)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VC업계 관계자는 “투자 시장이 혹한기지만 성장 가능성이 큰 AI 반도체 기업은 예외”라고 말했다.

벤처업계에서 외부 인재를 공격적으로 뽑는 것은 AI 반도체 등 일부 분야뿐이다. 스타트업이 즐겨 활용하는 채용 플랫폼 원티드랩에 따르면 채용 공고는 작년 5월 8498건에서 올 1월 4981건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지난해 유니콘 기업인 야놀자와 직방은 희망퇴직을 받고 일부 직원에게 권고사직을 통보하는 등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기도 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