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적 정권, 인권훼손에 기술활용"…서울 민주주의 정상회의서 중러 직격
조태열 "디지털 기술로 가짜뉴스·거짓정보 위협 증폭"
美블링컨 "선거의 해…적들이 허위정보로 민주주의 균열 이용"(종합)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18일 서울에서 열린 민주주의 정상회의에서 권위주의 세력 등에 의한 허위정보(disinformation) 전파 위험성에 강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오후 민주주의 정상회의 전문가 라운드테이블 기조연설에서"더욱더 복원력 있는 정보 환경을 만드는 것은 우리에게 핵심 안보이익이자 시급한 외교적 우선순위"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올해가 전세계적으로 '선거의 해'임을 언급하며 "시민들과 후보들은 시민사회의 진지한 토론을 질식시키는 거짓말의 홍수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우리의 경쟁자와 적들은 허위정보를 통해 의심과 냉소주의, 불안정을 부추기면서 민주사회 내부의 균열을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블링컨 장관은 중국과 러시아가 허위정보를 이용하는 사례를 직접적으로 거론했다.

그는 "지난해 9월 우리(미국)은 중국 정부가 어떻게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 선전을 퍼트리고 국제 정보환경을 왜곡시키는지를 기술한 보고서를 공개했다"고 언급했다.

중국이 아프리카 케이블TV 플랫폼을 사들인 뒤 구독 패키지에서 국제뉴스 채널을 제외시키거나 동남아 미디어기업을 인수해 친중국 보도를 하게 하는 것 등을 구체적 사례로 들었다.

또 "우리는 서반구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를 약화시키기 위한 크렘린의 은밀한 캠페인을 밝혀냈다"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은 "우리는 외국 적대세력들의 정보 조작에 맞서기 위한 틀(framework)에 파트너, 동맹국들을 결집시키고 있다"고도 했다.

아울러 "각국 정부가 언론의 자유와 온·오프라인에서의 언론인 안전을 수호해야 한다.

독립적이고 강력한 언론은 건강한 민주주의의 초석이기 때문"이라며 언론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오전 진행된 개회식과 '인공지능(AI)·디지털 기술과 민주주의' 주제 장관급 회의에서는 "권위적, 억압적 정권이 민주주의와 인권 훼손을 위해 기술을 활용하는 상황에서 기술이 민주 가치와 규범을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AI 등 신기술이 중국을 비롯한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 잘못된 용도로 사용될 때 민주주의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내포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우리는 AI 및 다른 디지털 기술의 힘을 제어해 선한 목적에 사용하려 하지만, 일부 정권은 반대로 이를 남용하고 있다"며 안면인식 같은 AI 도구를 시민 감시나 언론인·인권옹호자·반체제 인사에 대한 위해에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온라인에서 인권 옹호자들에 대한 공격을 예방하고 완화하며 정당한 대응을 취하도록 IT 기업들에 도구를 제공하기 위한 지침(guidance)을 처음으로 오늘 발표할 것"이라고 공개했다.

최근 미국 정부는 외국에서 상업용 스파이웨어가 반체제 인사나 정치적 반대자 등의 탄압에 이용되고 있다고 보고 대응 조처를 내놓고 있다.

이번 민주주의 정상회의에서도 상업용 스파이웨어 오용 문제를 중점적으로 제기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이밖에 블링컨 장관은 "강력한 정치적 개방 물결이 냉전 종식 이후 전 세계에 일었지만, 지난 20년간 민주주의는 후퇴했다"고 우려했다.

그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말을 인용해 "민주주의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라며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갱신해야 한다.

불편하고 고통스럽더라도 우리 자신의 결점을 투명하게 직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지정학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전 세계는 민주주의 가치 후퇴를 목격하고 있다"며 이에 따라 국제적 지형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디지털 기술이 민주적 참여를 증진하기도 하지만 가짜뉴스와 거짓 정보, 디지털 감시 위협도 증폭하고 있으며 이는 민주사회의 근간을 훼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미카와 요코 일본 외무상은 화상 연설에서 "AI가 외국으로부터의 정보 조작에 사용될 위험이 있다"며 "AI를 활용해 악의적인 내러티브를 생성하고 유포해 민주적 절차와 국제협력을 저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주의 정상회의 장관급 회의에서는 이외에도 유럽연합(EU) 부집행위원장, 에콰도르 외교장관 등 30여명의 각국 장차관급 인사가 대면 또는 화상으로 연설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