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지도를 펴놓고 보면 남반구와 북반구를 잇는 좁디좁은 땅이 두 곳 있다. 인류는 이들에 운하를 뚫어 배로 두 바다를 건너갈 수 있도록 했다. 아시아와 유럽 바닷길을 잇는 수에즈운하와 북미와 남미 사이를 통과하는 파나마운하다. 세계 바닷길의 ‘혈맥’으로 불리는 이 두 운하가 작년 가을부터 막혔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수에즈운하)과 가뭄(파나마운하) 때문이다. 두 운하가 동시에 막힌 건 유례 없는 일. 각종 공산품과 석유, 곡물 등을 실은 수많은 배는 어쩔 수 없이 지름길 대신 먼 길을 돌아가고 있다. 반년 가까이 흘러도 뚫리지 않는 운하에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기업의 주름은 깊어지고 있다.
수에즈는 전쟁, 파나마는 가뭄…급소 찔린 '글로벌 해상물류'

전쟁이 막은 亞~유럽길

1869년 수에즈운하 개통은 해운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었다.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는 무역선이 더 이상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을 돌아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돌아가면 6500㎞를 더 가야 하니 해운사들은 운항시간(10~12일)과 기름값(70만달러·싱가포르 저유황유 기준)을 획기적으로 아낄 수 있게 됐다.

해운사들은 그 대가로 운하의 주인인 이집트에 척당 140만~170만달러(2만4000TEU급 컨테이너선 편도 요금 기준)를 낸다. 기름값보다 훨씬 비싸지만, 운항일수와 선박 정비비용 등을 감안하면 ‘남는 장사’라는 게 해운사들의 설명이다. HMM 관계자는 “고속버스처럼 정해진 노선을 항해하는 컨테이너선은 시간이 곧 돈”이라며 “수에즈운하가 없었다면 해운사들은 훨씬 많은 컨테이너선을 보유해야 한다”고 했다.

수에즈운하를 통과하는 선박은 지난해 주당 평균 114척이었다. 이 수치가 올 들어 50척 밑으로 떨어졌다. 발단은 작년 10월 터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다. 하마스의 지원을 받는 예멘의 후티 반군이 수에즈운하 길목(호르무즈해협)을 지나는 선박에 무차별 공격을 감행하고 있어서다.

그러자 HMM은 물론 머스크, MSC, 하파그로이드 등이 작년 12월부터 희망봉으로 방향타를 돌렸다. 미국 주도의 다국적 해군 함대가 나섰지만, 후티 반군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있다. 현재 아시아와 유럽을 오가는 컨테이너선의 대부분은 희망봉 우회길을 거치고 있다.

가뭄이 막은 亞~美길

파나마운하를 막은 건 인간이 아니라 자연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동태평양을 뜨겁게 달군 엘니뇨의 여파로 이 일대가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어서다. 엘니뇨는 2~5년마다 반복되지만, 이번 가뭄은 이례적으로 길고 심하다.

82㎞ 길이의 파나마운하는 산을 통과하는 구조다. 이 때문에 파나마운하에 들어선 배는 계단처럼 산을 넘어야 한다. 첫 번째 칸에 들어가면 갑문을 닫아 수위를 높인 뒤 두 번째 칸으로 이동하는 식이다. 여기에 쓰는 물을 인근 가툰호에서 끌어오는데, 현재 이 호수의 수위는 역대 최저치다. 파나마운하청(ACP)이 선박 수 제한에 나선 이유다.

작년 7월 하루 37척이던 파나마운하 이용 선박은 지난달 18척으로 반토막 났다. 파나마운하 대신 대서양과 태평양을 오가려면 칠레 밑 남극을 돌아야 한다. 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 동부 뉴욕으로 갈 경우 파나마운하를 이용하면 8370㎞지만, 남극으로 우회하면 2만900㎞가 된다. 2주 더 걸릴 뿐 아니라 수없이 많은 빙산 탓에 ‘선원의 무덤’으로 불리는 케이프혼도 지나가야 한다.

全산업에 영향…에너지 위기도 우려

수에즈운하는 세계 컨테이너 운송 물량의 30%가 오가는 물류 요충지다. 파나마운하가 차지하는 비중은 5%밖에 안 되지만 한국 중국 등 동북아시아에서 미국 동쪽 해안으로 향하는 컨테이너 물량만 따지면 40%가 이곳을 통과한다. 이 두 곳이 막힌 탓에 지난해 1000을 밑돌았던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올 들어 2000을 뚫었다. 운임이 두 배로 뛰었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해운사들이 함박웃음을 짓는 건 아니다. 단기적으론 돈이 되지만, 불확실성이 커지는 데다 필요 없을 수도 있는 배를 추가 발주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가능성도 있어서다.

제조업체들의 피해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한국에서 유럽과 북미 동안으로 가는 화물 운송료가 치솟은 데다 납기일마저 늦춰지고 있기 때문이다. 르노코리아의 올 1월 유럽 수출 차량이 1년 전(7929대)보다 97% 줄어든 226대에 그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내 타이어회사들도 유럽 수출에 차질이 생겼다. 유럽에 공장을 둔 테슬라와 볼보는 아시아에서 오는 부품이 끊겨 공장을 멈춰 세우기도 했다.

석유 수출입에도 문제가 생기고 있다. 호르무즈해협을 오가는 원유 수송량은 하루 200만 배럴로, 세계 해상 원유 수송량의 27%를 차지한다. “홍해 리스크로 유럽의 에너지 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세계은행)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블룸버그는 “두 운하가 완전히 막히면 글로벌 해상 운송은 18세기 수준으로 퇴행할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이런 문제가 장기화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최근 중동 정세에 대해 “긴장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 것만 봐도 그렇다. 연구원은 “동유럽에 공장을 둔 한국 가전, 석유화학, 배터리 기업들이 부품 공급 비용 증가 등에 시달릴 수 있다”고 진단했다. 파나마운하는 우기가 시작되는 5월 이후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세계 컨선 절반 다니는 대만해협도 긴장 고조
양안관계 악화에 中 군사작전 우려…남쪽으로 우회하면 18시간 더 걸려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무역항로.’

중국 대륙과 대만 섬 사이에 있는 대만해협에 따라붙는 설명이다. 대만해협은 가장 좁은 곳의 폭이 126㎞다. 세계 컨테이너선의 48%가 서울~대전 거리보다 좁은 이 해협을 지나간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한국에 이보다 중요한 뱃길은 없다. 한국에서 미주로 가는 배를 제외한 거의 모든 선박이 이곳을 지나기 때문이다.

대만해협도 점점 불안해지고 있다. 중국의 대만공격설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지난 1월 친미·반중 성향의 라이칭더가 대만 총통으로 당선된 여파다. 지난해 중국은 대만해협에서 월평균 두 차례 군사훈련을 벌였다. 그때마다 해운사들은 항로를 대만 섬 남쪽으로 조정해야 했다.

이렇게 돌아가면 18시간 더 걸리고 벙커C유도 120t(1만TEU급 컨테이너선 기준) 더 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대만해협을 이용하지 못하면 연료비가 5만달러(약 6680만원)가량 추가로 들어간다”고 했다.

올해 양안(중국·대만) 관계가 악화해 중국이 대만 섬 봉쇄 등 군사작전을 펼치면 그 피해는 연료비 추가 지출에 그치지 않는다. 고속버스처럼 정해진 노선을 도는 컨테이너선은 주요 기항지를 들러야 하는데, 기항지 운항 자체가 막힐 수 있어서다.

대만을 마주보고 있는 중국 푸젠성 샤먼항은 HMM의 50개 노선 중 7개 노선이 들르는데, 전쟁이 나면 이 항구를 아예 못 쓸 수 있다. 지오메이산업단지에서 생산한 전자제품을 세계에 수출하는 이 지역은 중국에서 물동량 7위(1243만TEU·지난해 기준)에 달하는 항구를 갖추고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파나마·수에즈 운하에 이어 대만해협 등에서도 지정학적 리스크가 갈수록 커지고 있어 걱정스럽다”고 했다.

김진원/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