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유한양행은 왜 회장직을 신설했나
유한양행이 결국 회장직을 신설했다. ‘주인 없는 기업의 사유화 시도’라는 일각의 비판에도 현 경영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국 1위 제약사라는 우물 안 개구리에 머물지 않고, 글로벌 제약사로 성장하는 데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유한양행은 지난해 3월 김열홍 고려대 의대 안암병원 종양혈액내과 교수를 전격 영입해 연구개발(R&D) 총괄사장에 앉혔다. 글로벌 블록버스터 후보로 꼽히는 폐암 신약 ‘렉라자’의 글로벌 진출과 새로운 신약 발굴 업무를 모두 맡겼다. 유한양행이 외부 인사를 사장으로 영입한 첫 케이스다.

인재 오픈 이노베이션 실험

김 사장 합류 후 유한양행은 큰 꿈을 꾸기 시작했다. 3년 안에 글로벌 50위 제약사로 도약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지금보다 매출을 세 배 넘게 늘려야 가능한 일이다. 김 사장은 지난 6일 제주에서 열린 ‘2024 한경바이오인사이트포럼’에서 개략적인 로드맵을 소개했다. 내년 2개 이상의 글로벌 신약을 출시하는 게 출발점이다.

유한양행은 김 사장 같은 외부 인재를 더 영입하고 싶어 한다. 실무자급 인재는 물론 지도자급 인재를 더 영입해야 회사가 바뀔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수입약과 제네릭에 의존하는 기존 사업 구조를 바꾸는 데도 외부 인재를 활용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판단 역시 깔려 있다. 그런 만큼 이번 회장직 신설은 사장급 인재를 더 영입하겠다는 의사표시인 셈이다.

1926년 설립된 유한양행은 소유와 경영이 철저하게 분리된 덕분에 지배구조 우수 사례로 꼽혀왔다. 창업자 유일한 박사가 1969년 자녀들에게 상속을 포기하고 당시 조권순 전무에게 사장직을 물려준 게 시작이었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사장까지 오르는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는 유한양행이 국내 1위 제약사로 탄탄하게 성장하는 데 큰 몫을 했다.

지배구조 훼손 막는 게 관건

회장·부회장직 신설이 일부 직원의 반발을 산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일부 직원은 본사 앞에서 트럭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회장이 유한양행과 계열사의 경영을 좌지우지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에서였다. 지배구조 훼손 우려라는 부담을 안고 굳이 회장직을 만들어야 하느냐는 비판도 나왔다. 그런 점에서 회장직 신설로 소유와 경영 분리가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보완장치 마련이 필요하다.

지난 8일 주총에 참석한 유 박사의 손녀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의 말도 새겨볼 만하다. “유일한 박사의 이상과 정신이 유한재단과 이 회사가 나아가야 할 가이드라인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정직한 방식인지, 그리고 얼마나 경영시스템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에 따라 평가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한양행의 회장직 신설이 회사 성장에 어떤 역할을 할지 아직은 가늠하기 어렵다. 다만 국내 시장에만 올인했던 기존 사업방식을 바꿔 해외에서 성과를 내는 경영시스템을 갖추는 데 초석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우리나라는 아직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을 배출하지 못했다. 유한양행의 렉라자가 유력한 후보로 주목받고 있다. 지배구조 논란으로 한국 1호 글로벌 블록버스터의 꿈이 무산돼서는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