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연의 시적인 순간] 되어질 수밖에 없는 우리
얼마 전 베트남에 다녀왔다. 문학 교류 행사를 겸한 여행이었다. 나는 웬일인지 평소 같지 않게 쑥스러움을 탔다. 작품으로만 알고 있던 작가들을 이렇게 한꺼번에 만나니 사교성 좋은 나도 조심스러워졌다. 친해지고 싶은 생각으로 뱉은 말이 오히려 관계를 훼손할까 걱정이 앞섰다. 조금은 서먹하고 어색한 일행 사이에 익천문화재단 로고가 그려진 깃발을 들고 섰다. 신기하게도 깃발을 들고 있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내게 말을 걸어주었다. 깃발이 이런 것이라고? 좋네? 이런 걸 보면 사교성이 발휘되기 위한 조건이 따로 존재하는 게 분명하다.

사람들이 깃발 아래로 천천히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여행길이 어딘지 모르게 아름다웠다. 나부끼는 깃발 밑에서 나는 깨달았다.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여기저기 흩어진 일행을 하나로 모으는 저 고요한 힘을. 유치환 시인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란 시구가 절로 떠올랐다.

이동 중인 버스 앞좌석에서 마이크를 잡은 가이드가 말했다. “이제 곧 우리는 도착되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내리시게 되어지도록 선착장 앞에 세워지게 되어집니다. 그렇게 배에 타게 되어지면은 6시30분부터 준비된 식사를 하시게 되어지게 될 것인데, 그 배로 사이공강을 유람하니, 식사를 다 마치게 되어지더라도 배에서 내리시지 않게 되어지는 것이죠.”

모든 게 되어진다니 좋긴 한데 듣는 내내 교정 욕망이 고개를 들었다. 직업병이다. 차에서 내렸을 때, 은유 작가가 어색함을 깨뜨리며 물었다. “근데, 가이드가 수동형 문장을 너무 많이 쓰지 않나요?”

“맞게 되어지겠습니다.” 일부러 쓴 수동형 문장에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한바탕 웃고 나니 직업적인 동질감이 드는 것과 동시에 베스트셀러 작가와 함께 웃을 수 있게 해준 가이드가 새삼 고마웠다. 인위적으로 서로의 거리를 좁혀야 하는 단체여행길이 팬심에 방해가 될까 걱정했는데 그런 우려를 말끔히 씻어주는 에피소드를 선물해준 것이다.

어느 순간 우리는 가이드의 말투에 빠져들었다. 이제 가이드의 언어적 습관은 우리에게 오직 즐거움을 증폭시키는 장치일 뿐이었다. 이 여행 최고의 에피소드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이 에피소드에 웃음을 터트리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가이드는 자상하고 친절했으며, 자기 일에 최선을 다했다. 베트남에 대한 애정을 담아 베트남 역사와 문화의 지식을 깊이 있게 공유했다. 저렇게 좋은 분이라면, ‘되어졌다’를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상대를 존중하려는 마음이 과한 언어적 표현으로 나타난 것이라는 나름의 결론에 이르자 극진하게 대접받은 그간의 여행 일정이 하나하나 떠오르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간혹 ‘되어졌다’ 없이 너무 정확한 문장을 구사하면 가슴이 철렁했다. 그럴 때면 은유 작가와 눈이 마주쳤다. “누가 말한 건 아니겠죠?” “그러게요. 이제 더 이상 되어지지 않고 있어요.” 우리는 누군가 가이드의 이중 수동을 지적한 것이 아닐지 추측하며,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때였다. “베트남에서는 구정에 친척들이 모이게 되어져 있는데 저희 집엔 70명이 모이게 되어집니다.”

안도의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여러분들, 이런 이야기 좋아하시는군요?” 가이드는 ‘되어졌다’ 때문에 웃음을 터트린 우리를 오해했다. 베트남 역사 이야기보다 사적인 이야기를 재미있어 한다고 생각한 가이드는 자신의 첫사랑 이야기까지 나아갔고 우리는 되어지고 있었다. 새봄을 맞으며 다 잘되어지길 바라는 복된 마음이 가득해지는 버스 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