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교복 맞추러 가는 날이다. 토요일은 남학생, 일요일은 여학생 딱 하루씩 지정되어 있어 서둘러 마을버스를 탔다. 작은 간판 하나가 이층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먼저 온 사람들이 계단 통로에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전엔 교복비가 부담스러워 졸업하는 선배에게 교복을 물려받기도 했는데, 요즘은 각 지방자치단체 교육청에 신청만 하면 입학준비금을 교복으로 지원해 준다. 이런저런 부담과 걱정을 앞세우지 않고 오롯하게 축하해 줄 수 있는 형편이라는 게 말처럼 쉽지 않은데 작게나마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이다.

부모들은 아이가 입은 교복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감회에 빠져드는지 저마다의 눈빛으로 애틋해진다. 그걸 지켜보는 나도 가슴이 일렁이는 걸 가라앉히느라 혼났다. 생각보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 우리 차례가 됐다. 재단사가 치수에 맞게 꺼내준 교복으로 갈아입고 나온 아이가 왜 이렇게 엉성해 보일까. “좀 큰 것 같은데 괜찮나요?”

재단사는 미래를 내다본 듯 확신에 차서 말했다. “지금은 그렇게 보이지만, 금방 작아져요. 무섭게 자랍니다.”

무섭게 자란다는 말이 정말 무섭게 들렸다. 하지만 맞춤복인데…. 뭘 맞춘 걸까? 줄자를 들고 아이의 어깨너비부터 허리둘레 다리 길이까지 세심하게 치수를 잰 사람이 하는 말치고는 앞뒤가 맞지 않아 웃음이 났다. 다른 아이들도 자기 몸보다 큰 교복을 입고 있었는데, 어떤 아이는 교복이 너무 커서 얼굴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재단사가 앞으로 커나갈 키와 몸무게까지 내다보면서 셔츠와 바지와 재킷을 꺼내준 것일까? 그러니까 지금의 치수가 아니라 미래의 치수를 잰 거라면 우리 아이가 입고 있는 건 너무 작은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래 앞으로 또 얼마나 더 자랄까, 미래의 치수 앞에서 흐르는 시간이 야속하기만 하다. 아이와 함께 쌓고 싶은 추억이 많았는데 몸과 마음이 바쁘기만 했다. 나는 교복을 입고 선 아이 앞에서 어리벙벙하기만 하다. 그 옆에서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6학년 마지막 날까지 등굣길을 함께한 남편은 흐뭇하게 웃고 있다.

교복을 가지고 집에 와서 다시 입혀 보았다. 소매가 길지만 그래도 어른스러워 보였다. 사진을 찍어 가까운 이들 몇 명에게 보냈더니 덕담이 쏟아진다. 김은지 시인은 교복이 주는 감흥이 특별했던 모양이다. 입학 축하한다고 용돈을 보내주었는데 엄마 생일 선물 살 때 보태라며 돈 쓰는 요령까지 전해줬다. 고마운 마음으로 따뜻하게 데워지는 중인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애가 교복을 입은 게 아니라 포댓자루를 뒤집어쓴 것 같아. 너무 커서 어쩐다니?”

“그렇게 입어야 한대. 진짜 금방 큰대! 이제 자랄 일밖에 없어.”

“그래도 그렇지, 희망이 너무 과해!”

웃음이 터졌다. 과하긴 과하다 싶으면서도 과한 나의 희망이 마음에 들었다. “분명히 한 계절에 10센티미터씩 클 거야.”

남편은 교복 바지와 셔츠를 다리미로 반듯하게 다려놓았다. 우리 아이가 저 교복을 입고 청소년기를 지난다고 생각하니 코끝이 시큰해졌다. 교복 한 벌에 마음을 담고 담다 보니 부적을 쓴 듯 든든해진다.

문득 이시영 시인의 차부에서란 시가 떠오른다. “중학교 일 학년 때였다. 차부(車部)에서였다. 책상 위의 잉크병을 엎질러 머리를 짧게 올려 친 젊은 매표원한테 거친 큰소리로 야단을 맞고 있었는데 누가 곰 같은 큰손으로 다가와 가만히 어깨를 짚었다. 아버지였다.”

등 뒤에 있어도 위로가 되고 위안이 되는 일은 얼마나 크고 눈부신 일인가. 묵묵하게 지켜보고 싶다. 마음이 왈칵 쏟아지더라도 가만히 아이의 어깨를 짚어주는 곰 같은 큰 손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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