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나발니! 나발니!" 날선 경계속 마지막 배웅한 추모객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러시아 곳곳서 모여…지하철 승강장부터 경찰·군 배치
장례식 열린 교회 주변 2∼3시간 전부터 추모객 줄 서 1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지하철 10호선 마리노역 주변은 몹시 북적였다.
경찰이 지하철 승강장부터 개찰구, 출구까지 5∼10m 간격으로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역 밖에도 경찰, 경찰차, 군인들이 있었다.
인도와 차도 사이에는 철제 울타리가 설치됐다.
역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마리노 우톨리 모야 페찰리(내 슬픔을 위로하소서) 교회 때문이었다.
평범한 교회지만 알렉세이 나발니의 장례식장으로 예고되면서 이날만큼은 세계의 시선을 모았다.
바짝 날이 선 러시아 경찰과 군의 감시 속에 오후 2시로 예정된 장례식 시간이 밀도 높게 다가왔다.
나발니의 동료들은 장례식에 많은 사람이 모이기를 바란다면서도 추모객이 경찰에 끌려갈 가능성을 우려했다.
부인 율리아 나발나야는 "장례식이 평화롭게 진행될지 아니면 경찰이 남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온 이들을 체포할지 확신할 수 없다"고 걱정했다.
오후 2시가 가까워지자 러시아 언론에서는 일제히 불법 시위를 엄단하겠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도 장례식 직전 "허가되지 않은 모든 집회는 위법"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교회 주변에서는 휴대전화와 인터넷도 잘 터지지 않았다.
러시아 독립매체들은 당국이 장례식 관련 사진·영상 전송을 방해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빨강, 하양, 노란색 꽃을 들고 나발니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러 온 이들의 행렬은 끊이지 않았다.
평일 대낮이고 극단주의자로 지정된 나발니를 추모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테지만 러시아 전역에서 추모객이 모였다.
오전 11시부터 이미 교회 정면은 물론 왼쪽 측면까지 줄이 생겼다.
오후 1시께에는 줄이 수 ㎞는 이어져 교회 울타리를 둘러쌌다.
수천 명은 돼 보였다.
교회 입구 쪽에 노란 꽃다발을 들고 서 있던 한 소녀는 "아침 10시 좀 넘어서 왔다"고 했다.
러시아 최북서단의 도시 무르만스크에서 왔다는 그는 "집이 멀어서 어제 교회 주변에 방을 잡았다.
그래서 일찍 올 수 있었다"며 힘없이 웃었다.
외국에서 온 추모객도 있었다.
30대 여성 마리나는 "세르비아에서 일하고 있지만 희망과 영감을 준 나발니를 추모하고 싶어서 휴가를 내고 왔다"고 말했다.
경찰이 걱정되지는 않느냐는 말에 "시위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일반인은 (러시아를)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엘리트들이 바꿔줘야 한다"며 자조적으로 답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표현'은 할 수 있다"고 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왔다는 중년 남성 드미트리는 "한국을 비롯해 싱가포르 등 여러 아시아 국가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그 나라들과 러시아는 다르다"며 "러시아를 바꾸고 싶어 한 나발니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학교 수업을 빠지고 왔다는 대학생 무리도 있었다.
그들은 나발니가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기억했다.
20대 후반 여성 나탈리아는 "경찰이 검문하면 뭐라고 답할까 고민하면서 왔는데 다행히 경찰이 잡지는 않았다"며 "혹시라도 체포되면 배고플 때 먹으려고 초코파이도 몇 개 싸 왔다"고 말했다.
추모하러 왔지만 "무섭다"며 더는 밖으로 말을 꺼내지 못하는 이도 있었다.
시민들은 조용하고 질서 있게 나발니 장례식을 기다렸다.
사진을 찍던 한 러시아 기자는 "특별한 소란을 피우지 않는다면 취재도 저지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들은 추모객에게 끊임없이 자신들의 존재를 각인하려는 듯 "도로의 오른쪽에 줄을 서시오", "차도에서 자동차 통행을 막지 마시오"라고 반복해 외쳤다.
차분했던 사람들은 나발니의 시신이 담긴 관이 영구차에 실려 도착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발니! 나발니!"를 외쳤다.
울면서 손뼉 치는 사람도 있었다.
저마다 용기를 최대한으로 모아 보내는 작별인사인 듯했다.
장례식은 의외로 짧게 끝났다.
20분 안팎의 장례식 뒤 나발니의 관이 다시 교회 밖으로 나오자 이를 보려는 군중의 동요에 경찰이 쳐 놓은 울타리가 무너지기도 했다.
나발니의 관을 싣고 달리는 운구차에 추모객이 던진 꽃송이가 쏟아졌다.
인근 보리솝스코예 묘지를 향해 함께 이동하는 사람들은 "정치범에게 자유를" 등 구호도 외쳤다.
이후에는 "전쟁 반대", "두렵지 않다", "러시아는 자유로워질 것이다"와 같은 '과감한' 구호도 등장했다.
나탈리아는 "오늘 수많은 사람이 모인 것을 보니 나발니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는 '포기하지 말라'고 했다"며 "두려움이 있는데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왔다는 게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장례식 열린 교회 주변 2∼3시간 전부터 추모객 줄 서 1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지하철 10호선 마리노역 주변은 몹시 북적였다.
경찰이 지하철 승강장부터 개찰구, 출구까지 5∼10m 간격으로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역 밖에도 경찰, 경찰차, 군인들이 있었다.
인도와 차도 사이에는 철제 울타리가 설치됐다.
역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마리노 우톨리 모야 페찰리(내 슬픔을 위로하소서) 교회 때문이었다.
평범한 교회지만 알렉세이 나발니의 장례식장으로 예고되면서 이날만큼은 세계의 시선을 모았다.
바짝 날이 선 러시아 경찰과 군의 감시 속에 오후 2시로 예정된 장례식 시간이 밀도 높게 다가왔다.
나발니의 동료들은 장례식에 많은 사람이 모이기를 바란다면서도 추모객이 경찰에 끌려갈 가능성을 우려했다.
부인 율리아 나발나야는 "장례식이 평화롭게 진행될지 아니면 경찰이 남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온 이들을 체포할지 확신할 수 없다"고 걱정했다.
오후 2시가 가까워지자 러시아 언론에서는 일제히 불법 시위를 엄단하겠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도 장례식 직전 "허가되지 않은 모든 집회는 위법"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교회 주변에서는 휴대전화와 인터넷도 잘 터지지 않았다.
러시아 독립매체들은 당국이 장례식 관련 사진·영상 전송을 방해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빨강, 하양, 노란색 꽃을 들고 나발니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러 온 이들의 행렬은 끊이지 않았다.
평일 대낮이고 극단주의자로 지정된 나발니를 추모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테지만 러시아 전역에서 추모객이 모였다.
오전 11시부터 이미 교회 정면은 물론 왼쪽 측면까지 줄이 생겼다.
오후 1시께에는 줄이 수 ㎞는 이어져 교회 울타리를 둘러쌌다.
수천 명은 돼 보였다.
교회 입구 쪽에 노란 꽃다발을 들고 서 있던 한 소녀는 "아침 10시 좀 넘어서 왔다"고 했다.
러시아 최북서단의 도시 무르만스크에서 왔다는 그는 "집이 멀어서 어제 교회 주변에 방을 잡았다.
그래서 일찍 올 수 있었다"며 힘없이 웃었다.
외국에서 온 추모객도 있었다.
30대 여성 마리나는 "세르비아에서 일하고 있지만 희망과 영감을 준 나발니를 추모하고 싶어서 휴가를 내고 왔다"고 말했다.
경찰이 걱정되지는 않느냐는 말에 "시위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일반인은 (러시아를)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엘리트들이 바꿔줘야 한다"며 자조적으로 답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표현'은 할 수 있다"고 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왔다는 중년 남성 드미트리는 "한국을 비롯해 싱가포르 등 여러 아시아 국가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그 나라들과 러시아는 다르다"며 "러시아를 바꾸고 싶어 한 나발니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학교 수업을 빠지고 왔다는 대학생 무리도 있었다.
그들은 나발니가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기억했다.
20대 후반 여성 나탈리아는 "경찰이 검문하면 뭐라고 답할까 고민하면서 왔는데 다행히 경찰이 잡지는 않았다"며 "혹시라도 체포되면 배고플 때 먹으려고 초코파이도 몇 개 싸 왔다"고 말했다.
추모하러 왔지만 "무섭다"며 더는 밖으로 말을 꺼내지 못하는 이도 있었다.
시민들은 조용하고 질서 있게 나발니 장례식을 기다렸다.
사진을 찍던 한 러시아 기자는 "특별한 소란을 피우지 않는다면 취재도 저지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들은 추모객에게 끊임없이 자신들의 존재를 각인하려는 듯 "도로의 오른쪽에 줄을 서시오", "차도에서 자동차 통행을 막지 마시오"라고 반복해 외쳤다.
차분했던 사람들은 나발니의 시신이 담긴 관이 영구차에 실려 도착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발니! 나발니!"를 외쳤다.
울면서 손뼉 치는 사람도 있었다.
저마다 용기를 최대한으로 모아 보내는 작별인사인 듯했다.
장례식은 의외로 짧게 끝났다.
20분 안팎의 장례식 뒤 나발니의 관이 다시 교회 밖으로 나오자 이를 보려는 군중의 동요에 경찰이 쳐 놓은 울타리가 무너지기도 했다.
나발니의 관을 싣고 달리는 운구차에 추모객이 던진 꽃송이가 쏟아졌다.
인근 보리솝스코예 묘지를 향해 함께 이동하는 사람들은 "정치범에게 자유를" 등 구호도 외쳤다.
이후에는 "전쟁 반대", "두렵지 않다", "러시아는 자유로워질 것이다"와 같은 '과감한' 구호도 등장했다.
나탈리아는 "오늘 수많은 사람이 모인 것을 보니 나발니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는 '포기하지 말라'고 했다"며 "두려움이 있는데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왔다는 게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