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 이상 50인 미만도 법 시행…날씨 등 돌발상황 많은 바다 노동환경 달라
어선어업계 "바다에 있는 것 자체가 리스크…수산업 특성 고려 2년 유예해야"
"바다가 육지랑 같나요" 중대재해처벌법 확대에 불안한 어민들
"요즘은 매일 선장이랑 통화하면 안전했는지부터 묻는 게 일이죠. 오늘도 갑자기 돌풍이 생겨서 고생했다길래 가슴이 철렁하더라고요.

"
경남 통영에서 30년 넘게 배 사업을 하는 60대 선주 A씨는 아침에 일어나면 선장에게 전화부터 건다.

밤새 안전사고가 발생하지는 않았는지가 제일 걱정이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에는 파도가 쳐도 물이 선내에 잘 들어오지 않도록 배를 새로 만들었다"며 "선장과 선원들에게 늘 안전에 신경 쓰라고 얘기하지만 사고가 나면 어떻게든 처벌을 받을 수도 있으니 매일 물가에 애 내놓은 심정이다"고 말했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어업인 불안이 커지고 있다.

특히 지난달 27일부터는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적용 범위가 확대되면서 걱정이 더욱 늘었다.

제조업은 물론 어선 어업과 양식업 등도 대상에 포함돼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등은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2021년 기준 5인 이상 50인 미만 선원이 근무하는 어선이 4천979척인 점을 고려하면 약 5천여개의 어업 경영체가 법 적용을 받는 셈이다.

어업인들은 어업과 수산업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일괄적인 법 적용은 현장과 괴리가 크다고 입을 모은다.

"바다가 육지랑 같나요" 중대재해처벌법 확대에 불안한 어민들
우선 바다와 육지 간 노동 환경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비교적 고정된 환경에서 외부 영향을 덜 받는 제조업과 달리 바다는 날씨 등 기후 상태에 따라 수시로 환경이 바뀌는 만큼 법 적용이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한 어업 관계자는 "어선 자체가 좁게 한정된 상황에서 안전을 위한 시설 개선도 한계가 있고, 설령 가능하더라도 소규모 어가에 고령 어업인이 대부분이라 현실적 한계가 많다"며 "특히 바다는 인력으로 통제할 수 없는 돌발 상황이 많아 사고 위험도 높고 사고가 나면 아무리 예방했더라도 처벌을 피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최필종 경남어선어업인연합회장은 "배 위에 물기를 없애라고 하는데 바다에서 조업하면서 그게 가능한 일인지 묻고 싶다"며 "어업은 일단 바다에 떠 있는 것 자체가 리스크"라고 말했다.

이어 "5인 이상부터 법이 적용되니 아예 안전하게 4명으로 줄이려는 어업인도 발생하지 않겠느냐"며 "고용에도 악영향을 끼치는 등 우려를 넘어서 업을 못할 지경이라는 말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위험한 상황이 많은 바다 어업은 사고도 잦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기관 손상이나 충돌, 안전사고 등으로 인한 어선 사고는 2020년 2천331건, 2021년 1천971건, 2022년 1천904건으로 매년 약 2천건 발생했다.

선원을 포함한 어업인 재해 사망 역시 2020년 114명, 2021년 129명, 2022년 102명으로 매년 100건 이상 일어났다.

수협은 어업인을 대상으로 교육, 홍보에 나서는 등 대응에 나섰다.

지난해 10월에는 중대재해처벌법을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하는 것을 2년 유예해달라며 정부와 국회에 건의문을 제출했다.

또 연·근해어업 중대재해 예방체계 지원 구축사업 용역을 통해 안전 표준 매뉴얼을 만들고 전국 업종별 수협을 돌며 관련 교육을 펼쳤다.

노동진 수협중앙회장은 "어업은 특성상 외국인 선원이 대다수를 차지해 법과 안전을 이해시키고 훈련하는 데 기간도 많이 필요하다"며 "안전과 생명은 반드시 지켜져야 할 소중한 가치인 만큼 법 자체를 반대하지 않지만, 바다라는 특수한 상황과 현장의 혼란 등을 고려해 2년 정도 유예가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