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아름다웠던 시절을 그리는 화가

프랑스에서 ‘벨 에포크’라고 부르는 시기가 있습니다. 보불전쟁이 종료된 1871년부터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 이전까지, 40여 년간의 평화롭고 문화예술이 번성했던 시기를 말하죠. 이 시기 파리에는 전 세계에서 모여든 예술가들이 한데 뒤섞여 카페에서 진한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이야기 나누고, 귀족 부인의 살롱에 모여 예술을 논하고,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시내를 거닐었습니다.
<미셸 들라크루아, 파리의 벨 에포크> 전시가 열리고 있는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전시장 내부
<미셸 들라크루아, 파리의 벨 에포크> 전시가 열리고 있는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전시장 내부
<미셸 들라크루아, 파리의 벨 에포크> 전시가 열리고 있는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전시장 내부
<미셸 들라크루아, 파리의 벨 에포크> 전시가 열리고 있는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전시장 내부
1933년에 태어난 미셸 들라크루아는 아버지로부터 전해 들었던 벨 에포크 시기 파리의 아름다움,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이어진 2차 세계대전 전후 자신이 겪었던 행복했던 시절을 기억에 의존하여 그리는 화가입니다. 들라크루아도 ‘내 그림은 사진이나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내 기억 속에서 편집되고 재해석한 아름다운 시절을 담았다’라고 말합니다.

미셸 들라크루아가 순박하고 아름다운 동화 같은 그림을 그리게 된 데에는 부모님의 역할이 큽니다. 어릴 적 ‘그림을 그리고 싶다’라는 말에 부모님은 화가에게 체계적인 미술 렛슨을 받게 했고, 독일군이 프랑스를 점령했을 때에는 사촌들의 집이 있는 교외 지역 이보르(Ivors)에 내려가 자연을 마음껏 탐험하도록 했습니다.

들라크루아의 모든 그림에는 천진난만한 소년과 몸통에 점이 세 개 콕콕 박힌 강아지가 등장합니다. 때로는 소녀의 모습으로도 등장하는 어린아이는 들라크루아 본인을 상징합니다. 역동적인 자세로 소년을 따라다니는 강아지는 들라크루아가 어릴 때 키우던 강아지 퀸(Queen)이고요. 그는 그림을 완성한 후 서명을 하기 직전에 꼭 퀸을 그려 넣는데 이는 그만의 방식으로 동심을 추억하는 것입니다.
전시장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구역. 어린 들라크루아와 퀸이 뛰어노는 모습을 빔으로 재현했다
전시장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구역. 어린 들라크루아와 퀸이 뛰어노는 모습을 빔으로 재현했다
미술 교육자로 일하던 들라크루아는 40대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시내를 수 킬로미터 걸어서 학교에 다녔던 감수성 풍부했던 소년 시절 눈으로, 귀로, 피부로 느낀 파리를 화폭 위에 옮기게 되죠. 파리의 명소들, 파리지앵들의 일상, 연인들의 낭만적인 순간, 이보르의 자연 속에서 보낸 인상적인 장면들이 시간이 멈춰버린 그의 그림 속에서 그대로 재현됩니다.

가수 스텔라 장의 <미셸 들라크루아, 파리의 벨 에포크> 전시 홍보 영상

90세 넘은 화가가 다시 붓을 든 이유

2019년 4월 15일, 노틀담 대성당이 원인 모를 화재에 휩싸여 10시간 동안 불탔고, 첨탑과 그 주변 지붕이 무너지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파리 시민들은 그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라틴어 찬송가를 불렀죠. 성당의 명칭인 ‘노틀담(Notre Dame)’은 프랑스어로 ‘우리의 귀부인’이라는 뜻으로 성모마리아를 일컫습니다. 노틀담 대성당은 14세기에 지어진 프랑스 고딕 건축 양식을 잘 살펴볼 수 있는 세계적인 문화 유산으로 무려 600년 이상 시민들의 영혼의 안식처 역할을 했습니다.

노틀담 대성당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외벽 파손으로 인해 한 차례 철거위기를 맞았었는데 이를 안타깝게 여긴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1802-1885)가 노틀담 대성당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 <노틀담 드 파리>를 출간하여 프랑스 국민들에게 노틀담 대성당의 역사적 가치와 보존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웠죠.

2019년 노틀담 대성당 화재 당시 뉴스 보도 영상

노화로 인해 잠시 붓을 놓았던 들라크루아는 노틀담 화재 사건을 접하고 다시금 붓을 들게 됩니다. 파리의 아름다움을 기록하는 일을 계속해야겠다는 결심을 했기 때문이죠. 그의 근 3년간의 작업을 보면 선들이 곧지 못하고 삐뚤빼뚤하거나, 등장인물들의 이목구비가 또렷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화가의 파리에 대한, 파리지앵에 대한 애정만큼은 듬뿍 담겨있기에 보는 이들에게도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들라크루아의 <눈 내리는 노트르담 대성당> 판화 작업
들라크루아의 <눈 내리는 노트르담 대성당> 판화 작업
<저녁 6시의 성당>, Digital Image ⓒ이수민
<저녁 6시의 성당>, Digital Image ⓒ이수민

들라크루아의 그림 속 오페라 가르니에

지난 1월 말, 파리에 ‘예술’을 컨셉으로 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파리의 대표적인 미술관, 박물관, 공연장을 매일 두 세 군데씩 방문하며 하루하루를 예술로 가득 채웠죠. 꼭 가보고 싶어 일찌감치 일정에 넣어둔 곳이 바로 오페라 가르니에인데 19세기 후반부터 파리 문화예술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이곳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오페라 가르니에는 세계적인 오페라단이자 프랑스 문화부에서 직속으로 운영하는 단체인 <파리 국립 오페라>가 상주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한경arteTV <옴브라 마이 푸>에 출연한 파리 국립 오페라의 클라리넷 수석 주자 김한

‘가르니에 궁(Palais Garnier)’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오페라 가르니에(Opéra Garnier)는 나폴레옹 3세와 유젠 오스만 파리 시장의 파리 개조 계획의 일환으로 지어졌습니다. 공모전을 통해 당당하게 입상한 30대 후반의 젊은 샤를 가르니에(1825-1898)가 무려 13년 동안 착수한 대형 작업이었죠.

오페라 가르니에의 지붕 모서리에는 황금 조각상 ‘아폴론의 시와 음악’이 빛을 받아 번쩍거렸고, 나폴레옹 3세 전용 출입구에는 청동으로 조각된 여신이 등불을 받치고 있었습니다. 대칭으로 설치된 중앙 계단, 화려한 프레스코 벽화, 눈부신 샹들리에, 대리석 부조로 장식되어 있는 30미터 층고의 중앙 로비는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워 시간여행을 한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오페라 가르니에와 그 앞 광장, 사교계 명사들의 뒷풀이 장소였던 평화의 카페까지 담겨있는 들라크루아의 그림
오페라 가르니에와 그 앞 광장, 사교계 명사들의 뒷풀이 장소였던 평화의 카페까지 담겨있는 들라크루아의 그림
콘서트홀 내부에서는 고개를 90도 이상 꺾어야 합니다. ‘색채의 마술사’라고 불리는 마르크 샤갈(1887-1985)이 그 특유의 몽환적인 그림체로 그려낸 천장화 <꿈의 꽃다발>을 보기 위해서이죠. 천장화 중앙에는 대형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설치되어 있는데 1896년, 무게 8톤의 샹들리에가 추락하여 인명사고를 낸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소설 <오페라의 유령>이 탄생했습니다.

에어비앤비 주최, 오페라 가르니에에서 <오페라의 유령>을 주제로 연 특별한 이벤트

샤갈의 천장화 <꿈의 꽃다발>과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샤갈이 드골 정부의 문화부 장관 앙드레 말로로부터 작업을 의뢰받아 1965년 완성한 천장화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오페라 속 등장인물들이 등장합니다.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의 등장인물들은 정열적인 빨간색으로,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서 가슴 아픈 사랑을 하는 알프레도와 비올레타는 아련한 노란색으로,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 <피델리오>에서 남편을 구출하는 현명하고 강인한 여성 주인공 레오노라가 기사를 향해 돌진하는 장면을 진취적인 느낌을 주는 초록색과 파란색으로 채색되어 있습니다.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중 <투우사의 노래>

현재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알려져 있지만 생전에는 큰 성공을 맛보지 못하고 세상을 뜬 조르주 비제(1838-1875). 사망한 해이기도 한 1875년에 초연된 그의 오페라 <카르멘>의 혹평을 듣고 비제가 큰 충격을 받았었다고 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더합니다. 독특한 개성, 날것의 매력을 가진 등장인물들이 등장하는 오페라 <카르멘> 속 다수의 아리아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투우사의 노래>는 젊고 매력적인 투우사 에스카미요가 술집에서 사람들에게 술을 권하는 장면에서 부르는 노래입니다.

"투우사여, 조심하라! 투우사여!
잊지마라, 그래 잊지마.
검은 눈동자가 너를 지켜보고,
사랑이 너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투우사여, 사랑이, 사랑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한 번뿐인 인생, 에스카미요처럼 매 순간을 오감으로 느끼며 능동적으로 만들어나가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