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 과부하에 2차 병원서도 "환자 수용 불가"…응급환자 지연 이송 잇따라
인턴들도 전국적으로 임용 포기…의사 단체 대표들 "끝까지 저항"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병원을 이탈한 지 엿새째이자 첫 일요일인 25일 전국 의료 현장 곳곳에서 혼란이 이어졌다.

부족한 인력에 중증 응급환자 위주로 운영되는 대학병원 응급실 앞에서는 아픈 몸을 이끌고 병원을 찾았다가 발길을 돌리는 환자들이 많았다.

전국적으로 의과대학 졸업생들의 인턴 임용 포기도 잇따르는 가운데 스승이자 선배 의사인 의대 교수들의 중재 움직임도 나오기 시작했다.

◇ 발길 돌리는 환자들…2차병원도 "환자 수용 불가"
"아버님이 기저질환자여서 큰 병원으로 온 건데, 2차 의료기관으로 가라네요.

"
이날 오전 대전 상급종합병원인 충남대병원을 찾은 40대 이선정 씨는 "아버님이 대상포진을 앓고 계신 데, 밤사이 복통이 있어 새벽부터 왔더니 중증이 아니어서 보기 어렵다고 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병원 직원이 '어제 온 암 환자도 여섯 시간 기다리다 가셨다'고 말하는데 어쩔 수 있겠느냐"면서 휴일에 문을 연 병원을 찾아 급하게 발길을 돌렸다.

충남대병원 응급의료센터 출입문에는 '대한전공의협의회의 단체 행동으로 인해 응급실 진료가 원활하지 않을 수 있어 중증 응급환자를 우선으로 진료할 예정'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대구지역 대학병원 응급실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응급실 앞에서 발길 돌리는 환자들…의료 현장 혼란 가중
영남대병원 응급실은 안과 의료진이 부족해 망막질환과 외상성 안구 손상 진료를 할 수 없었다.

신경과와 산부인과 역시 응급실에 의사들이 없어 추적관찰 환자 외에는 받지 않기로 했다.

강원도 춘천 한 시민은 "아이가 저녁을 먹고 난 뒤 지금까지 물만 먹어도 토를 해 강원대병원 응급실에 방문했는데 4∼5시간은 기다려야 한다는 안내를 받았다"며 "그럴 바에 아침 일찍 소아청소년과에 가라고 해서 그냥 나왔다"고 전했다.

대학병원들의 잇따른 환자 수용 불가 방침에 환자들이 중·소 병원으로 몰리면서 2차 병원 과부하도 현실화하고 있다.

대구 한 2차 병원은 '내원 환자 과밀화'를 이유로 이날 오전 11시 46분부터 응급실 환자 수용 불가 방침을 세웠다.

대전에서는 응급환자가 지연 이송되는 사례도 잇따랐다.

전날 오후 8시께 70대 여성이 혈뇨와 옆구리 통증, 고열 등 증세를 호소하며 119에 신고했으나 병원 12곳에서 수용 불가를 통보받고 1시간 만에 결국 자차를 이용해 서울 소재 병원으로 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새벽 4시께는 30대 외국인 여성이 복통과 하혈 등의 증세로 구급차에 실려 왔으나 병원 14곳에서 거부당해 3시간 만에야 대학병원으로 이송됐다.

대전시 소방본부에 따르면 지난 23일부터 이날 오전 6시까지 14건의 구급대 지연 이송 사례가 발생했다.

지난 20∼22일 5건을 포함해 전공의 집단 이탈 사태로 인한 지연 이송 건수는 19건으로 집계됐다.

군 병원 응급실 엿새째인 이날 정오까지 국군병원에서 진료받은 민간인은 전날보다 7명 늘어난 총 39명으로 파악됐다.
응급실 앞에서 발길 돌리는 환자들…의료 현장 혼란 가중
◇ 인턴 임용 포기 속출…레지던트 4년 차 이탈 우려까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다음 달부터 전공의 수련을 위해 수련병원으로 와야 할 신규 인턴들의 '임용 포기' 선언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23일 기준 전남대병원은 내달 인턴으로 들어올 예정이었던 101명 중 86명이 임용 포기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같은 날 기준 제주대병원은 입사 예정 인턴 22명 중 19명, 경상대병원은 37명이 임용 포기서를 냈다.

인턴 포기 인원은 부산대병원 50여명, 충남대병원 60여명, 전북대병원 57명, 충북대병원 35명 등으로 집계됐다.

전공의들의 빈 자리를 메우던 전임의와 교수들도 재계약 여부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상황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조선대병원에서는 재계약을 앞둔 4년 차 전임의 14명 중 12명이 '재임용 포기서'를 제출하고 내달부터 병원을 떠나기로 했다.

전공의 말년인 '레지던트 4년 차'들이 전문의 획득 후 병원을 떠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응급환자들을 이송하고 있는 경기 북부 지역의 한 구급대원은 "아직까진 환자 이송에 큰 불편은 없다"면서도 "전공의의 역할을 전임의와 교수들이 직접하고 있는 상황이라 그들의 피곤함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응급실 앞에서 발길 돌리는 환자들…의료 현장 혼란 가중
◇ 정부·의료계에 협상 촉구도…의사들 "끝까지 저항"
정부와 의료계의 '강 대 강' 대치 속에 불편이 가중되자 현실적인 정책 마련을 위한 대화에 나서라는 제안도 나왔다.

서울대를 비롯한 전국 10개 거점 국립대 교수회장으로 구성된 거점국립대교수회연합회 회장단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정부와 의료단체는 현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의료 정책 수립에 협력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2천명 증원 원칙을 완화해 현실을 고려한 증원 정책을 세워달라"며 "일부 대학 책임자와 전문가들은 정부에 잘못되고 과장된 정보를 제공한 것을 사과하고, 전공의들이 의료 현장으로 돌아오도록 혼신의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 의과대학 교수들은 정부와 의사단체 사이에 중재 역할을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진행 서울의대 교수협의회 비대위원장(분당서울대병원 병리과 교수)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호소문'에서 "지난 금요일 저녁 차관님과 허심탄회한 대화 속에서 저는 정부가 이 사태의 합리적 해결을 원하고 있으며, 향후 이성적인 대화를 통해 최적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는 전공의들에 과도한 위협이 될 수 있는 각종 발언을 자제하고, 전공의에 대한 각종 명령이나 행정행위 또한 법적 절차를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도 전날 성명을 내고 "현 의료 비상사태를 해결하고자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정부뿐만 아니라 의사단체 등과도 대화하며 적극적으로 중재자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연세대 의대 교수평의회는 따로 성명을 내 "제자들에 대한 부당한 처벌이 현실화하면 스승으로서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의사단체 대표자들은 끝까지 저항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대한의사협회와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대표자 확대회의를 열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책을 강행한다면 전체 의료계가 적법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끝까지 저항하겠다"는 결의문을 발표했다.
응급실 앞에서 발길 돌리는 환자들…의료 현장 혼란 가중
(장아름 김선형 강태현 박성제 이성민 김동철 심민규 김상연 최종호 김용태 박주영 고성식 김잔디 성서호 박수윤 김소연 기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