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작곡가의 뜻을 헤아린 피아니스트를 발견했다, 2명씩이나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템페스트'의 3악장은 클래식 애호가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유명한 곡인데, 이 3악장의 핵심 동기의 아티큘레이션이 실제 연주에서 베토벤의 악보 그대로 연주되지 않고 있는 점은 아쉬운 일입니다.

이 3악장의 핵심 동기는 아래 악보의 빨간색 박스 부분처럼 16분음표 3개와 8분음표 1개로 구성된 매우 단순한 것입니다.
천재 작곡가의 뜻을 헤아린 피아니스트를 발견했다, 2명씩이나
이 핵심 동기는 이음줄(slur)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연주를 할 때로 4개의 음을 이어서 연주해야 합니다. 그런데, 피아노는 해머로 현을 때려서 소리를 울리는 일종의 타악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울리는 음 자체가 논레가토의 성격을 가집니다. 물론 피아노 건반을 계속 누르고 있거나 아니면 페달을 밟아서 음들을 연결시킬 수는 있지만, 이는 현악기나 관악기가 내는 지속음이나 레가토와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따라서 피아니스트는 이런 레가토를 연주할 때 현악기 등을 참조하여 그 뉘앙스나 느낌을 최대한 잘 ‘모방’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템페스트 소나타의 3악장의 핵심 동기의 아티큘레이션(레가토)을 현악기로 표현할 때는 아래와 같이 울립니다.



위 연주에서 슬러(slur)로 연결되어 레가토로 연주되는 핵심 동기를 자세히 들어보면 첫 음이 충분히 강조되고 이어지는 음들은 마치 디미뉴엔도가 붙은 음들처럼 살짝 여려지면서 마지막 4번째 음은 짧게 맺어집니다.

따라서, 슬러로 연결된 이런 음표들을 피아노로 연주할 때는 단순히 슬러(slur)로 묶어진 음들을 공백없이 이어서 연주하는 것에서 나아가 (현악기를 최대한 모방하여) 첫 음을 충분히 강조하고 마지막 음은 여리게 살짝 끊어 연주하여야 합니다.

이 기본 동기를 피아노로 연주할 때의 울림을 좀 더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아래의 동영상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연습을 위한 느린 연주




그런데, 실제 연주에서는 이 핵심 동기의 첫 음이 거의 없는 것처럼 들리게 (또는 4개의 음표가 아닌 나머지 3개의 음표만 존재하는 듯) 연주해버립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 어떤 연주에서도 이 핵심 동기의 맨 첫 부분이나 아래의 코다의 마지막 피날레 부분에서는 핵심 동기의 첫 16분음을 분명한 존재감을 가지고 타건하여 연주한다는 점입니다.

피날레 부분




그러나 문제는 모든 피아니스트들이 그 첫 울림이나 마지막의 코다 이외에는 이 핵심 동기를 전혀 그렇게 연주를 하지 않아서 따-다-다-단 하는 레가토의 울림을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데에 있습니다.


폴리니 






파질 세이






임현정




즉, 위의 연주에서 보듯이 피아니스트들은 거의 예외 없이 이 핵심 동기의 첫 음이 거의 없는 것처럼 (또는 4개의 음표가 아닌 나머지 3개의 음표만 존재하는 듯) 연주해버립니다.

사실 이 기본 동기의 아티큘레이션은 그 동기가 저음현에 의해 표현될 때 좀 더 분명히 알 수 있는데(아래 악보 참조), 이 부분에서는 그나마 (운명교향곡의 운명의 동기를 닮은) 이 동기의 리듬을 제대로 표현하는 연주자가 가끔 있기는 합니다(아래 Zitterbart 연주 동영상 1:34 이하).
천재 작곡가의 뜻을 헤아린 피아니스트를 발견했다, 2명씩이나
천재 작곡가의 뜻을 헤아린 피아니스트를 발견했다, 2명씩이나
Zitterbart




그러나 이 핵심 동기를 낮은 음역에서 연주할 때는 위와 같이 그 동기의 첫 음을 분명히 강조하는 연주자들 가운데서도 (이상하게도) 그 밖의 다른 부분에서는 이 동기의 아티큘레이션을 분명히 부각시키지 못합니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주로 페달의 과잉 사용으로 인한 왼손 아르페지오와의 중첩, 그리고 알레그레토 치고는 지나치게 빠른 연주 속도 등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피아노로 레가토를 어떻게 표현하고 연주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연주자들의 인식 결여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혹시나 이 핵심 동기의 아티큘레이션을 제대로 연주하는 연주가 없나 하고 유튜브에 올라온 무수히 많은 연주들을 샅샅이 살펴보았으나 그 동안 제대로 된 연주를 발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드디어 이 부분 아티큘레이션과 관련하여 제대로 된 표현을 시도한 극소수의 피아니스트를 발견하였는데, 바로 Charles Foreman과 Keiko Shichijo 라는 피아니스트입니다.


Charles Foreman






Keiko Shichijo 




특히 이들은 (베토벤의 유명한 ‘운명의 동기’를 닮은) 3악장의 핵심 동기의 아티큘레이션과 리듬을 지켜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특히 이러한 아티큘레이션과 리듬은 닥쳐온 엄청난 시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이 자기의 길을 가고자 하는 한 예술가의 열정과 처절한 의지를 담아낸 것이기도 하기에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이런 아티큘레이션의 표현 문제도 다 연주자의 재량사항이라고 한다면 굳이 할 말은 없겠습니다. 하지만 천재 작곡가가 그렇게 섬세하게 공을 들여 아티큘레이션을 악보에 구분하여 기재하였다면 악기로 표현되어지는 소리 또한 분명 달라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앞으로 보다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좀 더 정확하고 분명한 아티큘레이션으로 이 곡을 연주해주기를 기대해봅니다.

© 임성우 - 클래식을 변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