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함께 지내는 사람들이 외계인의 존재를 믿고 있을까 종종 궁금해진다. 어쨌거나 나는 이 광활한 우주에 지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생명체가 우리뿐이라면 그건 지독한 공간의 낭비라던 칼 세이건의 말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대학 1학년 교양수업에서 임의로 시도했던 나의 드레이크 방정식*은 이미 확신과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전혀 다른 이야기이지만 나는 신의 존재를 회의하곤 했다. 오랜 유물론 학습으로 인한 내적 결론 같기도 하고, 어릴 때 강요된 신앙의 부작용 같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껏 신이 없다고 말해본 적은 없다. 인류는 아직 나아가지 못한 세계가 많고, 그 안에서도 내가 알고 있다고 믿는 것들은 너무나 하잘것 없다.

어쨌든 모른다는 것이다. 무엇을 모르는지마저 다 알 수 없지만, 이 유연한 빈 공간을 다채로운 상상과 사유로 채워간다면 즐겁지 않을까. 그런 기쁨을 아는 당신이라면 우다영의 소설집 <그러나 누군가는 더 검은 밤을 원한다>를 함께 읽고 싶다.
칠흑 같은 우주의 밤을 무언가가 꽉 채우고 있다
<세계의 문학>을 통해 스물넷의 나이로 다소 일찍 데뷔한 소설가 우다영은 탄탄한 문장과 개성적 형식으로 눈길을 끌어온 작가이며 올해로 데뷔 10주년을 맞았다. 그의 두번째 소설집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이 낯선 시공을 따라 소요하듯 헤매는 밤의 연속에 독자를 흠뻑 빠뜨렸다면, 이 소설집은 이전 작품집과 닮은 듯 더 나아가서 정통적인 스타일의 SF 세계관 안에서 작가의 사고 실험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공들여 구축한 세계 위에 설득력 있는 인물들이 등장해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다소 정적으로 전개되지만, 외연적이든 내면적이든 그들 안의 갈등은 높은 긴장감 속에 고조된다. 우아하고 지적인 우다영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신선한 질문들에 도달하는 다섯 편의 SF소설. 익숙함에서 낯섦으로, 인지 세계에서 미인지의 세계로 모호한 경계를 넘어가며, 점차 번지고 넓어지는 감각의 성장에 대해 생각했다.
칠흑 같은 우주의 밤을 무언가가 꽉 채우고 있다
읽다 보면 옥타비아 버틀러나 필립 K. 딕 같은 고전 SF를 떠올리게 되기도 했지만, 그것이 어떤 기시감으로 작용하지 않고 오히려 우다영의 밀도 높은 사고 실험을 여실히 담아내는 튼튼한 그릇처럼 느껴지곤 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들 하는데, 어떻게 변주하느냐에 따라서 신선함은 끊임없이 고안될 수 있다. 올겨울 칠흑보다 더 검고, 텅 비면서 꽉 찼던 우다영의 밤은 무엇보다 놀라운 충격이었다.


* 우리 은하 안에서 인류와 교신할 수 있는 지적 외계 생명체(문명)의 수를 추산하는 확률적 방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