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어느 법원의 판단이 맞나.’

국민은행의 임금피크제를 두고 법원에서 정반대 판결을 내놔 산업 현장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회사별 임피제 도입 방식에 따라 법원 판결이 갈리는 경우는 있어도 이번처럼 동일한 임피제를 두고 한쪽 법원은 회사 측을, 다른 법원은 근로자 손을 들어주는 건 이례적이라는 게 법조계의 설명이다.

○회사 승소 임피제, 석 달 뒤 근로자 손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방법원 민사15부(부장판사 이진화)는 지난 8일 국민은행 전·현직 직원 135명이 낸 229억원 규모의 임금 및 퇴직금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지난해 11월 서울중앙지법 민사41부(부장판사 정회일)가 국민은행 전·현직 근로자 16명이 제기한 임피제 소송에서 회사 측 손을 들어준 것과 정반대되는 판결이다.

국민은행은 2008년부터 노조와의 합의를 통해 임피제(1차 임피제)를 시행해왔다. 회사는 ‘임금피크제 운영지침’을 마련해 58세인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는 대신 기존 임금을 50%로 줄였다. ‘일정 연령에 도달하면 정년을 연장하되 임금을 하향하여 조정한다’는 운영지침에 따라서다.

2016년 회사는 이 같은 별도 운영지침을 폐지하고 ‘인사운영지침’에 임피제 세부 조항을 넣으면서 직원 정년을 60세로 올렸다. 대신 임피제 정의를 ‘일정 연령에 도달하면 임금을 하향하여 조정하는 제도’로 바꿨다. 기존에 있던 ‘정년을 연장하되’를 뺀 것이다. 그러면서 이전과 동일하게 55세부터 임금을 절반으로 깎는 임피제를 운영했다.

이에 국민은행 근로자 135명은 회사를 상대로 소송에 나섰다. 개정된 2차 임피제가 정년을 연장하지 않는 ‘정년유지형’인 만큼 근로자 측 불이익이 큰 데도 노조 동의를 받지 않았으므로 무효라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회사가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려면 근로자 과반수나 과반수 노조의 동의가 필요하다. 이에 사측은 “2차 임피제는 정년이 개정된 1차 임피제일 뿐”이라며 “근로 조건을 불리하게 바꾼 게 아니며 선행 판결에서도 적법한 제도로 확인됐다”고 맞섰다.

양측의 주장을 두고 남부지법은 2차 임피제 정의가 변경된 것은 근로자에게 불리한 게 분명하다고 판단했다. 과반수 노조의 동의를 받지 못해 무효라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정년이 연장될 것을 전제로 실시하는 임피제에 비해 정년 연장 여부와 무관하게 일정 연령이 되면 실시하는 임피제가 더 불리한 근로 조건임은 분명하다”고 판시했다. 특히 “변경 전 규정이 보호하던 정년 연장이라는 근로 조건을 박탈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지난해 11월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개정된 2차 임피제를 두고 “임피제 운영지침이 없어지고 인사운영지침이 추가된 것만으로는 근로자들이 이미 갖고 있는 권리나 이익이 박탈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현대자동차·기아 등 줄소송

이번 남부지법 판결을 두고 법조계와 노동계의 시각은 엇갈린다. 최진수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법원이 국민은행 임피제 자체의 효력을 직접적으로 판단한 것이 아니라 절차적 하자에 관해 판단한 것”이라며 “다른 회사의 임피제 소송에 끼치는 영향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 노동계 관계자는 “국민은행을 대상으로 진행 중인 나머지 임피제 소송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민은행 임피제 소송은 총 5건이며 지금까지 2건에 대해 1심 판결이 나왔다.

첫 두 재판의 결과가 엇갈리면서 금융업계는 나머지 소송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금융업은 재직자의 평균 임금 수준이 높은 데 비해 임피제로 인한 감액 폭이 크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임피제를 두고 판결이 엇갈리고 있어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임피제를 둘러싼 소송 전선은 제조 대기업에도 확산하고 있다. 지난 5일 기아 퇴직 간부 77명은 회사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1인당 5000만원, 총액 37억원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기아는 2004년 과장급 이상 간부사원에게만 적용되는 취업규칙을 별도로 마련한 뒤 2015년부터 취업규칙을 개정해 임피제를 도입했다. 이 과정에서 노조 동의를 받지 않은 만큼 취업규칙 변경이 무효라는 것이 핵심 주장이다. 현대차 간부 32명도 서울중앙지법에 회사를 상대로 16억원 규모의 소송을 냈다.

박시온/곽용희 기자 ushire90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