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빡빡한 도시, 편리하지만 숨막히는 풍경…지하철서 실신 경험도"
"지방도 '짠내·갓생' 마찬가지…그래도 서울 안 돌아갈래요"
"남들 수준 맞춰 열심히 벌다가…" '탈서울' 3인에게 들어보니
547만명. 최근 10년(2014∼2023년)간 서울을 떠난 인구 수다.

통계청에 따르면 이 기간 서울로 거주지를 옮긴 이들은 461만명으로, 서울에서 다른 시·도로 86만명이 순유출된 셈이다.

서울을 떠난 사유 1위는 주택(174만명)이다.

높은 집값이 서울을 떠난 가장 큰 배경으로 분석된다.

가족(158만명), 직업(135만명), 교육(20만명), 주거환경(15만명) 등도 전출 이유로 지목됐다.

그러나 사람과 집, 기업과 각종 인프라가 집중된 대한민국의 중심을 벗어나는 결정을 간명한 하나의 이유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연합뉴스는 저마다의 이유로 '탈서울'을 결정한 20∼40대 3명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들은 다르고도 닮은 사유로 서울을 떠날 결심을 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어서 서울에서 탈출한 뒤에도 좌충우돌을 겪고 여전히 고민도 많지만 "서울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고 입을 모았다.

"남들 수준 맞춰 열심히 벌다가…" '탈서울' 3인에게 들어보니
◇ "모든 게 넘치는 도시에서…남들만큼 쓰려면 열심히 벌어야 하더라"
인천에 사는 프리랜서 에디터 전소현(25)씨는 서울에서도 교육열이 높기로 유명한 양천구 목동과 노원구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학원과 독서실이 다닥다닥 늘어선 거리와 그 사이를 오가는 학원 버스들은 당연하고도 익숙한 풍경이었다.

그러다 성인이 돼 처음 서울을 떠나고 제주도와 헝가리, 체코 등 국내외 여러 지역에서 살아본 뒤 다시 선 어릴 적 그 거리에서 그는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서울에는 자기 계발을 위한 학원이 어디에나 있고 헬스장은 걸어서 5분 거리마다 붙어있다"며 "지방에서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을 위해 서울로 올라온 친구들도 많았다.

결국 여긴 성공을 위해, 적어도 무언가 발전시키려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서울은 사람뿐 아니라 물건도 넘쳐나, 결국 온갖 물건과 서비스를 소비해야만 하는 도시로 느껴지기도 했다.

소현씨는 "서울에서 잠시 일을 하는 동안 돈을 벌면 항상 번 돈을 어디에 쓸지를 고민했다"며 "무슨 옷을 구입하고 어떤 화장품을 살지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남들 수준 맞춰 열심히 벌다가…" '탈서울' 3인에게 들어보니
현재 세종에 거주 중인 이지운(48)씨는 대기업 직장 생활 11년째인 2016년 스스로 '완전히 소진됐다'고 느꼈다.

잦은 야근과 스트레스로 건강까지 나빠지면서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직장을 그만두기로 했다.

동시에 "모든 '머리 아픔'의 근원은 서울"이라고도 생각했다.

모든 게 가까이 연결된 곳이지만 역설적으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은 없었다.

일상이 된 교통 체증으로 마포구 상암동과 강남역을 오가는 출퇴근길 자동차 안에서 1시간을 꼼짝 없이 갇혀 있어야 했고, 버스나 지하철에서 보내는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차도 사람도 넘쳐나는 곳에서 점점 여유를 잃어갔다.

열심히 소비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생활은 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서울에서는 아내와 호텔 뷔페를 가거나 성수동의 좋은 식당을 찾아갔다"며 "좋은 차를 비롯해 모두 비슷하게 '사는 수준'에 맞춰서 남들이 하니까 하게 되는 걸 하느라 더 많은 돈이 필요했고 그러려면 열심히 벌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경북 울릉군에 살고 있는 이지혜(32)씨는 2013년 나고 자란 서울을 처음으로 떠났다.

처음에는 서울이 싫어서가 아니라 여행이 좋아서 떠났지만, 떠난 곳에서 다시 서울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서울은 나와 맞지 않는 도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했다.

사람이 많은 전철에서 미주신경성 실신이나 공황 증세를 겪기도 했다는 지혜씨는 "인파가 많은 도심에서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으려 애를 썼다"며 "서울에서 일상이 항상 피곤했던 이유도 높은 인구 밀도 때문이란 걸 느끼고서 '서울을 떠나야겠다'란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남들 수준 맞춰 열심히 벌다가…" '탈서울' 3인에게 들어보니
◇ 지역 자원 활용한 '로컬 크리에이터'·프리랜서 에디터·펜션 운영
지혜씨는 2020년 완전히 서울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경북 안동을 거쳐 재작년 울릉도에 둥지를 텄다.

이곳에서 행사나 여행 프로그램을 기획하거나 기념품을 제작하는 등 지역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하는 '로컬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 생활과의 차이점을 묻자 "인구 밀도가 낮아 일상생활에서도 경쟁이 덜 치열하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된다"고 했다.

하다못해 버스 안에서 자리 차지를 위한 눈치 싸움을 할 필요도 없게 됐다.

지운씨는 퇴사 뒤 먹고 살 방법을 궁리하던 차에 평소 반려견과 놀러 갈 곳이 부족해 불편을 겪었던 경험에 생각이 미쳤다.

그렇게 여러 지역을 둘러본 끝에 아내와 함께 충남 홍성에 내려가 반려동물 동반 펜션을 차리게 됐다.

약 4년 동안은 펜션 운영만 하다가 이후 서울의 한 스타트업에 다니며 '4도 3촌'(4일은 도시에서, 3일은 농어촌에서) 생활을 하기도 했다.

지금은 세종으로 거주지를 옮겨 전주의 한 스타트업에서 비상근직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탈서울'을 하더라도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를 텐데 내 경우 인구 30만명 정도의 소도시가 더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지금은 시험 삼아 1년 넘게 세종에서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소현씨는 4년 전 전주에 머물며 서울과 지방의 격차를 크게 느꼈다고 했다.

각종 인프라의 격차가 불평등하게 느껴지면서 더 다양한 지역에서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경남 거제도와 제주, 전북 전주, 충남 부여 등을 옮겨 다니다 현재는 인천에 머물며 서울 외 지역에서 더 재밌게 살고 싶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커뮤니티를 기획하고 인터뷰도 하고 있다.

"남들 수준 맞춰 열심히 벌다가…" '탈서울' 3인에게 들어보니
◇ "지방에도 '짠내나는 삶' 마찬가지…그래도 서울은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서울살이가 싫어 떠났다 한들 녹록하기만 한 곳이 있을까.

소현씨는 "지방에도 똑같이 '짠내' 나는 삶이 기다리고 있고 서울처럼 '갓생'을 살며 버텨야 할 때도 있다"며 웃었다.

지운씨는 "집을 짓고 행복하게 사는 것까진 좋았는데 결국 돈을 벌어야 하더라"며 "있는 돈을 (까먹으며) 쓰는 상황에서 어느 정도 돈을 벌기 위해 정말로 힘들게 펜션 운영을 했다.

그러다 사람이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겁이 나기도 했다"고 돌아봤다.

기회와 일자리는 여전히 대부분 서울에 있어서 먹고 살 방법을 고르는 선택의 폭이 넓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서울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고 한다.

지혜씨는 "성공적인 '탈서울'의 열쇠는 결국 돈벌이 해결에 달려 있다.

탈서울을 위해 이 직업을 선택했지만 임금이 낮은 편이라 여전히 고민이 많다"면서도 "'탈서울 라이프'에는 만족하고 있다"고 단언했다.

그는 "무엇보다 가장 만족스러운 요소는 '자연이 가깝다는 점'"이라며 "해가 긴 여름에는 퇴근 후 스노클링을 하거나 집 앞에서 오징어를 낚아 먹기도 한다.

서울에서는 날을 잡아야 할 수 있는 일들을 일상생활처럼 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지운씨 역시 "이곳에서도 바빴지만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스트레스는 없었고 이제는 내가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찾은 것 같다"며 "(서울에서보다) 적게 벌지만 그만큼 쓸 일이 별로 없고 그 씀씀이를 맞추기 위해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자유로워지니 훨씬 마음이 편하다"고 전했다.

소현씨는 서울을 벗어난 뒤 '없어도 되는 삶'에 대해 진정으로 알게 됐다고 전했다.

'서울이 가진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중심으로 살게 됐다고 한다.

그는 "서울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꽉 채워진 바쁜 곳이지만 이곳에선 적어도 내가 어디에 사는지를 느끼면서 살게 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남들 수준 맞춰 열심히 벌다가…" '탈서울' 3인에게 들어보니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