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러시아에 나토 공격 권유' 논란…바이든 "끔찍하고 위험"
미국 공화당 유력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방위비를 부담하지 않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을 공격하도록 러시아를 부추기겠다는 폭탄 발언을 해 후폭풍이 거세게 일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일제히 반발했고 백악관은 침략을 조장하는 '끔찍한 발언'이라고 규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올해 11월 미국 대선에서 재집권에 성공한다면 러시아나 중국 등 다른 강대국과 협력하는 동맹국이 생겨나고 과거 한국전쟁 때처럼 전쟁을 부추기는 결과를 만들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서방국 반발…바이든 “끔찍하고 위험”

트럼프 전 대통령의 동맹국 경시 발언은 지난 10일(현지시간)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열린 대선 후보 경선 유세에서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나토 회원국 중 방위비를 제대로 부담하지 않는 나라를 보호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 그들(러시아)이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격려할 것”이라고 답했다는 과거 발언을 공개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 당시 나토 회원국이 안보 문제에 있어 미국에 ‘무임승차’ 한다며 방위비 추가 분담을 강하게 요구해 갈등을 빚었다. 이번에는 한발 더 나아가 적국에 동맹국을 공격하라고 선동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서방국은 일제히 반발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11일 “동맹이 서로 방어하지 않을 것이라는 암시는 미국을 포함해 우리 모두의 안보를 훼손한다”며 “나토를 향한 모든 공격엔 단결해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나토의 안보에 관한 무모한 발언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도움이 될 뿐”이라며 “세계에 더 많은 평화와 안전을 가져다주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폴란드 정부는 “동맹국의 신뢰를 훼손하는 것은 나토 전체를 약화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비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에게 더 많은 전쟁과 폭력에 대한 청신호를 주려고 한다”며 “끔찍하고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미국 백악관은 “사람을 죽이려 드는 정권이 우리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을 침략하도록 장려하는 것은 끔찍하고 정신 나간 일”이라고 논평했다.

서방국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나토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집단 방위’ 정신을 완전히 무시했기 때문이다. 나토는 북대서양조약 제5조에서 ‘회원국들은 다른 회원국에 대한 무장 공격을 회원국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또 무장 공격 발생 시 ‘개별적으로 또는 다른 회원국과 협력해 지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나토를 사실상 지휘하고 있다. 미국의 외교정책이 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선 유력후보인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은 중요하게 해석된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한국전 부른 '애치슨라인급' 평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런 강경 발언을 할 수 있던 근거는 있다. 나토 회원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2% 이상 국방비 지출’ 목표에 합의했지만, 지난해 이 기준을 지킨 나라는 미국·영국 ·폴란드 등 11개국뿐이다. 나토 추산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해 국방비로 GDP의 3.49%인 8600억달러(약 1146조 원)를 지출했다.

이에 따라 미국 내에선 나토에 주는 것이 많다는 인식이 있었다. 2011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로버트 게이츠 당시 국방장관은 유럽의 국방비 삭감을 비판하며 “미국이 위험과 비용을 나누고 싶지 않은 사람을 위해 싸우는 데 지쳤다”고 언급한 바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 후 실제로 나토 무력화를 추진할지는 불투명하다. 하지만 러시아나 중국 등 다른 강대국과 협력하는 동맹국이 생겨나거나 더 큰 전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을 의지하지 못하게 된 동맹국이 다른 강대국과 동맹을 맺도록 유도하고, 푸틴 대통령이나 시진핑 국가 주석과 같은 사람들을 대담하게 만들 수 있다”며 “역사적으로 보면 (이런 상황이) 전쟁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유발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NYT는 그러면서 “1950년 딘 애치슨 국무장관이 한국을 제외한 (극동) ‘방위선’(애치슨 라인)을 발표한 지 5개월 뒤 북한이 (남한을) 침략했고, 결국 미군이 참전하게 됐다”면서 미국의 외교정책 변화로 한국 전쟁과 같은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NYT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을 더 내지 않으면 자신의 두 번째 임기에 주한미군 철수가 우선순위 의제가 될 것”이라고 공언해 온 점을 예로 들면서 그가 재집권할 경우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을 더는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끊는다면 러시아가 결국 승리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영국 가디언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 내정의 여파를 분석한 기사에서 “유럽이 미국의 지원 공백을 채우지 않으면 우크라이나는 ‘슬로모션’으로 패배할 것”이라며 현재 러시아가 하루에 포탄 1만발을 발사하는 데 비해 우크라이나는 2000발만 사용할 수 있다고 전했다.

영국 BBC방송은 "나토와 서방이 우크라이나의 지난해 여름 공세 실패로 위태로운 시기를 맞은 상황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위험한 발언을 내놓았다"며 "자극적인 발언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으려는 전형적인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방식"이라고 해석했다.

신정은 기자 newye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