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딥브레인AI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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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많이 마시지 않고 알뜰하게 지내라." 주름이 자글자글한 백발 노인이 사투리가 묻어 나오는 목소리로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너희 아빠에게 이런 잔소리를 했단다"고 손자에게 털어놨다. 이어 손자가 할머니에게 "설 명절을 대비해 산 물건이 있나요?"라고 묻자 할머니는 "식용유 두 병을 샀는데 아주 향이 좋다"고 답했다. 석달 전 사망한 할머니와의 생생한 대화였다.

"술 마시지 말고 돈 아껴써라"…AI 할머니 목소리에 '왈칵'

영상=웨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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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중국 하얼빈일보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명절날 그리워지는 이 '할머니'의 정체는 인공지능(AI)이 부활시킨 '가상 인간'이다. 지난해 4월 중국 상하이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우 씨는 이 같은 대화 영상을 온라인 사이트에 공개해 화제가 됐다. 3살 때부터 부모 대신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와 간호했으나 결국 할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우 씨는 현지 언론에 "2주 동안 할머니 침대 옆에 붙어있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중환자실로 실려간 뒤엔 작별 인사조차 못하고 돌아가셨다"며 "할머니가 보고 싶다. 잔소리가 너무 그립다"고 말했다. 그는 "할머니의 장례를 치른 뒤 습관적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답이 없었다. 평소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전화하곤 하는데 지금은 누구에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영상=웨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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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할머니에게 제대로 된 작별 인사를 하고 싶어 AI로 할머니를 복원했다. AI 관련 직업에 종사하던 그는 할머니의 생전 사진을 AI 시스템에 넣어 아바타를 만들었다. 이후 할머니와의 통화 녹음 파일을 AI에게 학습시켰다. 목소리와 말투 등을 반복적으로 훈련시켜 실제 할머니와 유사한 수준으로 만들었다. 우 씨는 "간단한 대화만 가능한 수준이지만 90% 이상 비슷하게 할머니를 복원했다"고 설명했다.

"사진·영상 있으면 OK"…돌아가신 뒤에도 'AI 부모님' 본다

사진=bravado 홈페이지 캡처
사진=bravado 홈페이지 캡처
최근 AI 기술이 급속하게 발달하면서 고인의 목소리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과거엔 스마트폰에 저장된 그리운 고인의 영상이나 사진을 보는 데 그쳤다면, 이제는 AI 기술을 통해 고인을 디지털 휴먼으로 복원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특히 음성 복원엔 많은 데이터가 필요하지 않다. 과거엔 수 시간 분량 녹음본이 필요했지만, 최근엔 짧게는 10초 분량 녹음본만 있으면 목소리를 유사하게 합성해낼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 발전했다.

AI를 통해 이미지를 구현하고, 음성 합성을 통해 이미 사망한 사람의 목소리와 움직임을 실제처럼 재현할 수 있게 된 것. 해외에선 이미 사망한 고인이 AI 기술을 통해 문상객들을 맞는 사례가 나오기도 했다. 이른바 '디지털 불멸(digital immortality)' 시대가 된 셈이다.

음악계에선 AI 기술을 통해 '전설의 신곡'이 공개되기도 했다. 유니버설뮤직은 지난해 12월 비틀즈의 마지막 신곡 '나우 앤 덴(Now And Then)'을 발매했다. 이 음원은 멤버 존 레논이 1970년대에 작업해 둔 데모곡 중 하나였는데, 존 레논의 목소리가 피아노 반주에 가려져 계속 미완인 상태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AI 기술이 발달하면서 최근 두 음성을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들어 있던 곡이 약 반백년 만에 공개되자 비틀스 멤버들은 모두 큰 감동을 받았다고. 당시 폴 매카트니는 "존 레논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을 때 무척 감동했다"고 말했다. 링고 스타도 "실제 같은 공간에 있다고 느껴졌다. 모두에게 감동적이었고, 존이 마치 진짜 그 곳에 있는 것 같았다"며 "엄청났다"고 소감을 전했다.
신해철 /사진=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신해철 /사진=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1997년 총격 사건으로 사망한 미국 래퍼 비기 등을 비롯해 국내에서도 고 김현식·김광석·신해철·터틀맨 등 세상을 떠난 가수들이 AI를 통해 '디지털 휴먼'으로 부활해 화제가 됐었다.

"너무 보고싶어 의뢰했어요"…딥브레인AI '리메모리2' 출시

이미 해외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빅테크들이 관련 기술 개발에 나섰고 국내에서도 대기업과 스타트업들이 관련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사진=딥브레인AI
사진=딥브레인AI
딥브레인AI의 경우 2년 전 세계 최초로 연로하신 부모님의 건강한 모습을 AI 휴먼으로 구현해 평생 간직할 수 있는 '리메모리(Re;memory)' 서비스를 출시한 바 있다. 지난달 합리적 가격대로 '리메모리2'를 내놓았다. 모델이 직접 스튜디오에 방문해 약 3시간 정도의 촬영과 인터뷰를 진행해야 했던 기존 서비스와 달리, 리메모리2는 사진 한 장과 10초 분량의 음성만으로도 고인과 닮은 AI 휴먼을 제작하는 '드림 아바타' 솔루션으로 간편하게 진행할 수 있다.

회사 관계자는 "리메모리 출시 이후 개인 의뢰를 비롯해 B2B(기업 간 거래) 문의가 많이 들어오는 등 반응이 긍정적이었다"며 "최근엔 음성이 없더라도 비슷한 음성을 바탕으로 유사한 AI로 휴먼을 제작하는 서비스를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사진 한 장과 10초 분량 음원을 보유하고 있으면 AI 휴먼을 제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