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등장하는 이색 알바 구인 글의 모습. 최근 "집에 방문해 상차림 일을 도와달라"는 구인 글(우측)도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사진='당근' 앱 당근알바 섹션 캡처
명절에 등장하는 이색 알바 구인 글의 모습. 최근 "집에 방문해 상차림 일을 도와달라"는 구인 글(우측)도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사진='당근' 앱 당근알바 섹션 캡처
한 구인구직 플랫폼에 명절에만 볼 수 있는 이색 아르바이트가 등장했다. 집에 찾아가 명절 상차림을 돕는 '집안일 알바'다.

작성자는 연휴 점심, 저녁 시간 하루 3시간씩 시급 1만1000원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그는 "허리 병이 심해져 힘에 부친다"며 "아무래도 음식이다보니 주부가 오시면 더 좋지만 주부가 아니어도 요리할 줄 아시면 누구든 상관없다"며 구직자를 찾았다.

시급 1만3000원으로 연휴 직전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종일 전만 부치는 '전집 알바'도 등장했다. 해당 글은 모두 2500~3000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많은 관심을 모았다.

또 다른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우리 가게 이번 명절 단기 알바에 40명이 지원했다"며 "경기가 안 좋은 것을 실감한다"는 글도 게재돼 이목을 끌기도 했다.
서울 한 시내 카페에서 알바생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김범준 기자
서울 한 시내 카페에서 알바생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김범준 기자
연휴 기간 속속 등장하는 이색 구인 글이 주목받는 가운데, 오는 9일부터 시작되는 설 연휴에는 단기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는 '구직자'도 늘고 있다. 대다수 시민이 고물가로 부담을 느끼는 데다 취업난을 겪는 청년층 사이에서 귀성길보다는 차라리 일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편하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취업준비생인 20대 박모 씨는 이번 설 연휴에도 평소 주말 오전마다 하던 카페 아르바이트를 쉬지 않기로 했다. 카페 사장님이 먼저 "구정에 바쁘면 시간 조정을 해줄 수 있다"고 했지만 박 씨가 "그럴 필요 없다"며 손사래 쳤다고.

그는 "취준생 입장에선 연휴라고 해도 평소 주말과 다를 게 없다"며 "굳이 친척 집에 얼굴 비췄다가 잔소리 들을 바에야 알바비라도 버는 게 속 편하다"고 전했다.

최근 취직한 20대 조모 씨도 지난해 추석 연휴까지는 매 명절이면 기회가 닿을 때마다 '단기 알바'로 쏠쏠하게 용돈을 벌었다고 고백했다.

조 씨는 "학점 관리와 취업 준비를 병행하느라 학기 중 장기 알바를 하기가 쉽지 않은 여건이었다"며 "단기 알바 거리가 쏟아지는 명절 연휴를 노려 여유자금을 마련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남들이 쉴 때 일하면 업무 강도가 높지 않은 일도 평소마다 1.2~1.5배의 시급을 받을 수 있었다"고 부연했다.

지난 1일 구인구직 플랫폼 알바천국이 성인남녀 344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도 이를 방증한다. 명절 연휴 기간 아르바이트를 할 계획이라는 응답은 62.3%에 달한 반면, 설 연휴 고향 방문 계획이 있다는 이들은 절반 이하인 45.6%로 집계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설 연휴를 앞두고 진행한 동일한 조사의 결과와 비교하면 아르바이트를 하겠다는 응답의 비율은 8.3%포인트 올랐고, 고향 방문 계획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6.3%포인트 줄어들었다.

알바천국 측은 "전체 응답자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연령대는 20대이며, 구체적으로 보면 30대의 64.6%가 아르바이트 의향을 밝혀 가장 적극적인 구직 의사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10일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구직자가 일자리 정보를 살펴보는 모습. /사진=뉴스1
지난달 10일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구직자가 일자리 정보를 살펴보는 모습. /사진=뉴스1
일각에서는 청년층의 취업난이 명절 아르바이트를 부추겼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청년층에서 명절 아르바이트 의향이 늘었다는 건 취업난 영향이 있다"며 "현실적으로 취업하지 못한 채 친척들을 만나는 것에 대한 부담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실제 통계청의 '2023년 12월 및 연간 고용동향' 자료를 살펴보면 지난해 15~29세 청년층 취업자는 전년보다 9만8000명 쪼그라들어 18만3000명 줄어든 2020년 이후 3년 만에 감소세로 전환했다. 지난해 청년층 고용률은 46.5%를 기록해 2022년 대비 0.1%포인트 하락하며 전 연령층 중 유일하게 하락하기도 했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도 "청년들이 집에 가는 차비도 아끼고 생활비 부담을 덜 겸 명절 알바를 구하는 것"이라며 "청년층의 취업 부담과 소득 양극화가 남들 쉴 때 일하는 세태로 표현됐다"고 분석했다.

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smart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