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일에 점수 매기지 마라, 그럴수록 사람이 까다로워져" [서평]
잠에서 깨면 머리맡에 있는 스마트폰을 집어 들어 몇 시간이나 잤는지 살펴본다.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가 체중계 위에 선다. 회사에 도착하면 출근길 걸음 수를 체크하고, 업무 시간 틈틈이 어젯밤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의 좋아요는 몇 개인지, 팔로어는 늘었는지 확인한다.

우리는 수와 함께 살아간다. 여름휴가 때 묵을 숙소와 점심 메뉴를 정할 때도 평점과 리뷰 개수가 의사결정의 근거가 된다. 그런데 수는 믿어도 되는 것일까.
"남들 일에 점수 매기지 마라, 그럴수록 사람이 까다로워져" [서평]
미카엘 달렌 스톡홀름경제대 석좌교수와 헬게 토르비에른센 노르웨이경제대 전략·경영학과 교수는 <매일, 더, 많은 숫자의 지배>에서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는 수의 객관성과 정확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물론 수 자체엔 아무런 문제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를 만들고 접하고 해석하는 우리 인간은 그렇게 객관적이거나 중립적이지 않다.

2021년 겨울 스웨덴의 코로나19 감염자는 70만명이었다. 스웨덴 인구의 7%였다. 70만명과 7%는 같은 사실을 다르게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코로나19 감염자가 70만명이라는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7%라는 얘기를 들은 사람들보다 코로나19에 훨씬 더 큰 불안을 느낀다고 답했다.

수는 편견을 조장하기도 한다. 수백 명을 두 그룹으로 나눠 새로 나온 초콜릿 바를 먹게 하는 실험이 있었다. 첫 번째 그룹에는 이 초콜릿이 다른 평가에서 10점 만점에 5점 이하의 점수를 받았다고 말해 줬고, 두 번째 그룹에는 5점 이상을 받았다고 말해 줬다. 직접 먹고 나서 점수를 매기라고 했더니 첫 번째 그룹은 두 번째 그룹보다 상당히 낮은 점수를 줬다.

모든 것을 정량화하고 수치화하는 행위 자체가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1000명에게 몇 주 동안 일, 여가, 건강, 인간관계 등에 대한 행복감을 매기라고 했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점수가 낮아졌다고 한다. 저자들은 뭔가를 평가하고 점수를 매기다 보면 점점 까다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렇다고 수를 배척하고 살 수는 없다. 수치로 제시된 목표는 개인과 조직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해 주고 의욕을 불러일으킨다. 숫자로 나타난 성과는 성취감을 안겨준다. 수를 대신할 더 나은 지표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수는 부정확할 수도 있고, 잘못 해석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무엇보다 수는 정신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 현대인은 소득과 재산, 키와 체중은 물론 SNS 팔로어 수와 게임 레벨, 멤버십 포인트, 걸음 수까지 남과 비교할 수 있게 됐다. 나보다 돈 많고 키가 큰 사람만이 아니라 SNS 팔로어가 많고, 많이 걷는 사람에 대해서까지 열등감을 느껴야 한다면 불행한 일이다. 무엇이든 수로 나타내고 점수를 매겨 비교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나에게도 남에게도 조금 관대한 태도를 가져 보는 것은 어떨까. 그것이 오히려 세상을 더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유승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