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건설회사가 분양대금을 볼모로 소형 시행사에 추가 공사비를 요구하는 ‘갑질’을 일삼아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시행사에 ‘수익금을 찾아가는 데 동의할 수 없다’며 으름장을 놓는 식이다. 돈줄이 마르게 된 시행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공사비를 더 집어줘야 할 처지다.

5일 법조계와 건설업계에 따르면 시행사 T사와 코스닥시장 상장사인 중견 건설사 E사는 2022년 입주를 완료한 서울 마포구의 오피스텔 분양대금 분배를 두고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프로젝트가 시작된 2019년 T사는 E사에 110억원에 오피스텔 건설 공사를 맡겼다. 역세권 입지가 주목받으며 약 150실이 즉시 완판됐다. 준공 이후 2021년 초 입주도 별 탈 없이 끝났다.

이후 E사는 갑작스레 자재비 인상 등의 이유를 들어 ‘공사비를 80억원 더 달라’고 요구했다. T사가 ‘계약 위반’이라며 응하지 않자 E사는 10억원대 소송을 걸었고, 합의를 종용했다. 재차 T사가 거부하자 소송액을 90억원으로 높였다.

2년여의 재판 끝에 최근 1심 법원이 시행사 손을 들어주자 E사는 즉시 항소했다. T사 측은 “중간 협의 없이 추후에 공사비를 더 달라는 걸 법원이 인정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T사가 사업 종결 후 2년이 흘렀음에도 분양 수익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총매출 300억원대의 해당 프로젝트는 한 대형 신탁사가 자산 관리를 맡아 추진됐다. 신탁사 수익금은 금융회사, 건설사(시공사), 시행사 순으로 배분하는 사후정산 방식으로 시공사가 동의해야 시행사에 자금을 줄 수 있다. 공사비 인상을 요구하는 E사의 반대로 T사는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T사 관계자는 “필수 운영자금마저 묶인 영세 시행사 입장에선 회사 존폐가 위태로운 상태”라고 주장했다.

업계에선 E사가 소규모 시행사의 자금을 묶어 공사비를 받아낸 게 처음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E사는 2016년 서울 강남구 S주상복합을, 2019년엔 송파구 H오피스텔을 각각 다른 시행사와 함께 올렸다. 이 시행사들도 돈이 묶일 위기에 처하자 각각 E사에 기존 공사비에 수십억원을 얹어 지급했다. S프로젝트 시행사 관계자는 “시행사가 자금 여력이 없다는 걸 노린 행태”라며 “해당 프로젝트는 결국 적자로 끝났다”고 했다.

E사는 “시행사들의 주장은 일방적 얘기”라고 맞받았다. “공사비 정산은 계약서상 권리로, 프로젝트가 진행된 뒤 협의하는 게 맞다”는 설명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코로나 이후 물가 상승 영향으로 공사비 관련 분쟁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조철오 기자 cheol@hankyung.com